초고압 변압기를 중심으로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탄 국내 전력기기업계가 GIS(가스절연개폐장치) 시장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유럽 내 친환경 GIS 교체 수요가 맞물리며 새로운 효자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미국 텍사스 신규 변전소 프로젝트에 공급될 362kV(킬로볼트) GIS에 대한 공장인수시험(FAT)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해당 변전소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산업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번 FAT 완료를 계기로 HD현대일렉트릭의 초고압 GIS 기술력과 프로젝트 수행 역량이 미국에서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전망 전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핵심 설비인 초고압 차단기는 절연 매체에 따라 AIS(공기절연개폐장치)와 GIS로 나뉜다. AIS는 설치 면적이 넓은 대신 단가가 낮고, GIS는 설치 면적이 좁은 대신 단가가 높다. 그간 미국에선 주로 AIS가 사용돼 왔지만 최근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변전소 확대와 함께 GIS 수요가 늘고 있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은 국토 면적이 좁고 도심 밀집도가 높은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일찌감치 GIS 기술을 확보해왔다.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주요 업체들은 대부분 관련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변압기와 차단기를 패키지 형태로 묶어 공급하는 영업 전략을 앞세워 GIS 판매 확대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친환경 규제 강화도 GIS 시장의 추가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EU는 2031년부터 GIS에 환경유해물질인 육불화황(SF6) 가스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친환경 모델 전환을 추진 중이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 대부분이 SF6 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SF6-Free) GIS 고압차단기를 포함한 GIS 개발에 나선 상태다.
실제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달 초 145kV SF6-Free 고압차단기의 최종 승인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해당 제품은 스웨덴 전력회사가 운영하는 변전소에 공급될 예정이다. 현재 72.5kV, 145kV, 170kV 제품 개발을 완료했으며, 2028년까지 SF6-Free 고압차단기의 전 제품군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다. 핀란드 전력회사와 145kV 친환경 고압차단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주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네덜란드에 위치한 유럽 연구개발(R&D)센터를 중심으로 현지 맞춤형 친환경 제품 개발에 나섰다. 지난 4월에는 SF6 가스 대신 드라이에어를 적용한 145kV 차단기를 개발하고 양산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LS일렉트릭은 170kV 친환경 GIS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해외 수주 확대를 추진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리서치인사이트에 따르면 전세계 친환경 GIS 시장은 2024년 약 54억달러에서 2033년 74억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 가운데 친환경 GIS 수주 실적을 보유한 업체는 극소수"라며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