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산업 AI(인공지능)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업에서 나오는 방대한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 AI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챗봇과 콘텐츠 생성 중심의 AI가 아닌 의료·제조·에너지·도시관리 등 실물과 AI를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화웨이는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중국 톈진에서 열린 '2026 세계지능산업박람회(지보회)'에서 컴퓨팅·스토리지·네트워크와 결합된 AI 인프라를 전시하고 자동차·전자·제약 분야의 스마트 제조 적용 사례를 소개했다. 지보회는 톈진시와 충칭시가 공동 주최하는 중국 대표 인공지능·스마트산업 행사로, 기존 중국국제지능산업박람회와 세계지능대회가 2024년 통합되며 새롭게 출범했다.
지보회는 스마트산업을 주제로 하는 중국의 국가급 국제 박람회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년 연속 축하 서한을 보내며 AI 산업 발전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 CES가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혁신 제품을 선보이는 무대라면 지보회는 AI·스마트 제조·도시 인프라 등 산업 기술과 정책 방향을 집중적으로 제시하는 중국형 산업 박람회다. 최근 수년간 생성형 AI, 휴머노이드 로봇, 저고도 경제(지상 약 1000m 이하 저고도에서 드론 등을 활용해 물류, 교통, 공공서비스를 결합한 신흥 경제 생태계), 산업형 AI 등 중국의 전략 신산업이 가장 먼저 집약적으로 등장하는 행사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지보회에서 메이신은 AI·사물인터넷(IoT)·디지털 시스템을 결합한 스마트 도어를 공개했다. 긴급 상황 발생 시 자동 신고와 비상 개방 기능을 갖춘 이 제품은 AI가 전통 제조업 제품에 혁신을 가져온 사례로 꼽힌다. 메이신은 핵심 생산라인 자동화율 100%, 제품 가공 주기 45초를 구현하며 생산 공정의 지능화도 추진하고 있다.
의료 기업들도 AI 적용 사례를 발표했다. 톈스리는 중의약 대모델 '수즈번초'를 공개하며 중의학 고전·처방·약재 데이터베이스를 AI와 결합한 진단 보조, 건강관리, 신약 개발 솔루션을 선보였다. 아이플라이텍은 AI 문진 및 전자 질병 이력 생성 시스템을 전시했고, 충칭 하이푸과기는 AI 기능을 적용한 '하이푸다오(HIFU) JC300' 집속초음파 종양 치료 시스템과 가정용 초음파 관절 마사지기를 공개했다.
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도 AI 적용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바이리장비그룹은 스마트 마이크로그리드 및 제로탄소 솔루션, 스마트 배전·열공급 시스템, AI 기반 스마트 파이프라인과 디지털 트윈 펌프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공개했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과 AI 알고리즘을 통해 설비 상태를 예측하고 운영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AI가 에너지 생산·공급·운영 체계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도시관리 영역에서도 산업 AI 적용 사례가 대거 등장했다. 톈진청터우그룹은 '스카이 시티·전역 지능연결' 체계를 공개했다. 저고도 비행체를 활용한 산업단지 스마트 순찰, 고속도로 '공중 순찰+지상관제' 시스템, AI 기반 스마트 수자원 관리 플랫폼 등을 선보이며 도시 운영의 디지털화와 지능화를 추진한다.
현재 중국에서 산업 AI는 응용 서비스뿐 아니라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 제조, 전력, 도시관리 등 각 산업에서 축적되는 데이터가 AI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이를 통합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싱환커지는 이번 지보회에서 대규모 언어모델 운영 플랫폼(LLMOps)을 공개했다. 데이터·지식·모델·응용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AI 중추 플랫폼으로, 기업과 기관이 자체 AI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AI 경쟁의 중심이 모델에서 데이터 자산 관리와 컴퓨팅 인프라 구축으로 이동하고 있다.
피지컬 AI 역시 이번 지보회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의료·제조·에너지·도시관리 분야에서 AI가 운영 체계로 확장되는 가운데, 로봇은 AI가 물리 세계와 연결되는 대표적인 접점으로 부상했다.
올해 지보회에서는 '육·해·공 로봇 군단'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상에서는 갈릴레오의 사족보행 로봇과 휠-레그 복합 로봇이 전시됐다. 해양 분야에서는 '하이이' 수중 과학탐사 로봇과 '장툰 IV-C Pro' 해양 작업 로봇이 공개됐다. 공중에서는 윈성즈넝의 '공중 그리드 관리자' 무인기가 등장해 스마트 순찰 활용 사례를 선보였다. 시장의 관심은 더 이상 로봇이 사람처럼 움직이는지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생산성을 창출할 수 있는지로 이동중이다.
올해 지보회에서는 종합전시관을 비롯해 인공지능 핵심기술, 체화지능, 스마트 커넥티드카, 저고도 경제·상업우주, 스마트 제조, 스마트 라이프 등 6개 전문 전시관이 운영됐다. 또 집적회로, 휴머노이드 로봇, AI 의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등 첨단 기술과 신제품이 대거 공개됐다. 중국 AI 산업의 최신 기술 발전 방향과 산업 적용 흐름이 한자리에서 제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수년간 중국 AI 산업의 핵심 화두는 이른바 '백모대전'(중국에서 2023년 이후 수백 개의 대형언어모델(LLM)이 잇따라 등장하며 벌어진 생성형 AI 경쟁을 의미하는 말. 100+MODEL+대전)이었다.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즈푸AI 등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대형언어모델을 공개하며 범용 AI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시 경쟁의 중심은 모델 규모와 추론 능력, 생성 성능 향상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올해 지보회의 핵심은 새로운 대형언어모델이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 AI 산업의 중심축이 '모델 경쟁'에서 '산업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의료·제조·에너지·도시관리 등 실물 산업 현장에서 AI 활용 사례가 전면에 등장했으며, 산업 데이터와 운영 체계,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산업형 AI 경쟁이 새로운 성장 축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도 최근 '인공지능+' 전략을 본격 추진하며 AI와 실물경제의 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정보통신연구원이 올해 2월 발표한 '인공지능 산업 발전 연구보고서(2025)'에 따르면 중국 AI 핵심 산업 규모는 지난해 약 230조 원(1조 2000억 위안)을 넘어섰으며, 관련 기업 수는 6200개를 돌파했다. 오는 2030년 시장 규모는 1900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국무원이 발표한 '인공지능+ 행동 의견'은 AI와 각 산업의 심층 융합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올해 1월 공업정보화부 등 8개 부처가 공동 발표한 '인공지능+제조 특별행동 실시의견' 역시 기술 공급과 산업 적용을 동시에 확대하며 제조업의 지능화를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우차오후이 중국과학원 부원장은 이번 지보회에서 "2024년 전략 수립, 2025년 응용 시범 단계를 거쳐 2026년에는 지능경제의 새로운 형태를 구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며 "중국의 '인공지능+'는 체계적 배치와 대규모 응용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자오제 하얼빈공업대 로봇연구소 소장은 지보회에서 "체화지능 시대에는 로봇 산업이 전통적인 하드웨어 경쟁에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생태계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래 AI 경쟁력은 단순한 장비 성능이 아니라 감지·상호작용·의사결정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운영체계에 달려 있다"며 "독자적인 기초 운영체계와 평가체계를 구축하는 기업이 다음 단계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