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쟁'에서 쓸 수 있는 '총알'인 변압기를 만들어만 달라."
최근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현지 변압기 기업들에 이같은 당부를 한다. "전쟁 중에는 누구든 총알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함께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변압기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맥킨지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세계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 규모는 약 7조 달러(약 1경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AI 시대의 개화는 대한민국 제조업의 '골든(golden)'을 약속하고 있다. 실제 지난 10~11일(현지시간) 방문한 변압기 제조 업체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미국 공장은 향후 2~3년치 일감을 이미 쌓아둔 채 풀가동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몽고메리에 현지 최대 규모의 전력변압기 생산시설을 갖추고 지난 15년간 미국 시장에 1000여대에 달하는 변압기를 공급해왔다. 멤피스에 공장을 둔 효성중공업 역시 '북미 넘버1'을 목표로 잡았다.
양사 모두 내년까지 생산능력을 약 50% 늘리면서, 765kV(킬로볼트)급 초고전압 변압기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추기 위한 증설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내년 이후 본격화할 AI 인프라 수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다. 강성수 HD현대일렉트릭 애틀랜타법인장은 "AI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제조업이 빛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기회는 변압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 철강, 전선, 친환경 에너지 발전, ESS(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등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인프라 제조를 담당한다. 삼성, SK, 현대차, LG 4대그룹을 필두로 소재와 장비를 납품하는 중소기업까지 산업 전반이 AI 팩토리 밸류체인에 이름을 올리는 중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와 같은 사람들이 "한국 제조업은 월드클래스"라며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 독일이 했던 '제조업 리더' 역할을 AI 시대에 한국이 할 수 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한국 제조업의 역량은 AI 데이터센터를 넘어 자동차, 로보틱스, 조선업, 방산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캐리 콕스(Cary W. Cox)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상공회의소 이사는 "한국 기업들은 품질관리와 직원들의 근무태도 등에서 명확한 강점을 갖고 있다"며 "AI를 다룬다고 제조업 자체의 본질이 변한다고 말하기 어렵기에 한국 기업들이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