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Korea가 만드는 글로벌 미래
반도체·방산·조선·배터리·변압기까지,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특정 분야에 치우친 것과 달리, 한국은 첨단 기술을 중심의 '풀 스펙트럼' 포트폴리오로 공급망 재편기에 다양한 산업의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다만 중국의 추격과 대외 불확실성이라는 변수 앞에서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축으로 부상한 한국 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을 짚어본다.
반도체·방산·조선·배터리·변압기까지,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특정 분야에 치우친 것과 달리, 한국은 첨단 기술을 중심의 '풀 스펙트럼' 포트폴리오로 공급망 재편기에 다양한 산업의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다만 중국의 추격과 대외 불확실성이라는 변수 앞에서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축으로 부상한 한국 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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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인 반도체 산업이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사상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1조달러(약 1500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는 AI 인프라 경쟁의 중심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자리하고 있다. 두 기업은 전 세계 D램 시장의 약 70%를 장악하며 한국을 AI 시대의 핵심 제조 기지로 만들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과 일반 D램 수요 급증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이다. 1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각각 356조원, 25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양사의 영업이익 합계는 지난해보다 6. 8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전망은 더 밝다. 증권가는 내년 삼성전자가 467조원, SK하이닉스가 364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일부는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중동 전쟁과 관세 전쟁이란 유례없는 대외 악재 속에서도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순항 중이다. 배경에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K-제조업이 있다. 한국 경제의 전통적 성장 경로인 '수출 증가→제조업 생산 확대→설비투자 회복'의 선순환 성장 고리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대외 악재 속에서도 질주하는 K-경제━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우리나라의 잠정 실질 GDP(국내총생산)는 전기 대비 1. 83% 증가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덴마크(1. 89%)에 이어 가장 높은 1분기 GDP 성장률이다. 중동 전쟁 장기화 속에 주요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0%대에 머물며 정체 흐름을 보인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성적표다. 실제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 속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라는 3고(高)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전세계 경제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이다. 세계은행(WB)은 중동 전쟁 영향을 반영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
미국의 딥사우스(Deep South)는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남부 농업 중심 지역을 의미한다.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AI(인공지능) 혁명이 미국 전 지역을 강타하면서 이 지역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태양광을 바탕으로 풍부한 전력을 갖춘 이곳에 AI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빅테크 기업들이 노크를 하는 추세다. 앨라배마만 해도 현대차 공장 바로 맞은 편에 메타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착공 작업이 한창이었다. 캐리 콕스(Cary W. Cox) 몽고메리상공회의소 이사는 "지역 내에서 메타 외에도 두 곳 이상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고, 많은 곳에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관련 밸류체인 기업들이 공장을 짓기 위한 움직임도 확실하게 관측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앨라배마 주정부 인력개발기관(AIDT)의 바비 드링커드(Bobby Drinkard) 부국장은 "지역에서 데이터센터에서 필요한 인력 교육이 지난 18개월 동안 엄청나게 많이 늘어난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1948년 2월, 부산항에서 앵도환(櫻桃丸)이라는 이름의 낡은 화물선 한 척이 건어물과 한천을 싣고 홍콩으로 떠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수출선인 앵도환이 홍콩으로 떠난 그해, 한국의 수출실적은 1900만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수출실적은 사상 처음으로 7000억달러를 넘기며 일본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수출 6000억달러에서 7000억달러를 넘어서는 데 걸린 기간은 7년이다. 다소 더딘 속도였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실적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올해 수출이 9000억달러를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례를 찾기 힘들게 빠른 증가율이다. 그 배경에는 제조업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쓰는 제조업의 역사━제조업은 한국 산업 발전의 모태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며 경공업과 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산업 발전의 역사 속에서 그 중심에는 늘 제조업이 있었다. '한강의 기적'은 한국 제조업의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제조업의 미래는 장밋빛보다는 잿빛에 가까웠다.
자신감과 성취감. 지난 10일(현지시간) 찾은 효성중공업 미국 멤피스 공장(HICO)에서는 일종의 '긍정 에너지'를 온몸에 느낄 수 있었다. 효성중공업에 20여년 몸담고 있는 진민기 시니어엔지니어는 "공장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면서도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한 미국인 근로자는 에너지 음료를 뽑아 들이키며 기자에게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고 하며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2001년부터 '효성맨'으로 미국 사업을 이끌어온 제이슨 닐 효성 HICO 법인장도 고무된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행복한 도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압박감도 있지만 엄청난 수요가 존재하는 시장의 한 부분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HICO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 약 450명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동선(권선) 감기, 규소강판 적층, 진공건조, 조립 등 주요공정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표정에서 피곤함을 엿보기 어려웠을 정도다. 실제 효성 HICO는 연 100대 이상의 변압기를 만들 수 있는데, 2028년까지 주문이 꽉 차있다.
육중한 철로 만들어진 정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자리한 HD현대일렉트릭 북미 생산법인(HD HPT)을 방문했을 때 받은 인상이다. 공장 밖에는 변압기 완성품 70대가 열을 맞춰 도열해있었다. 그 앞에는 변압기 100대 분량의 자재가 깔려있었다. 공장 내부에 완성품과 자재를 배치해둘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변압기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상황이 이런 장관을 만들어냈다. HD HPT를 찾은 고객사들도 이 모습을 보면 입을 못 다물 정도라고 한다. "저 변압기들을 지금 우리가 가져가면 안 되나"라고 농담을 섞어 말하기도 한다. 한국 제조업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그만큼 미국 내 변압기 확보전이 치열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강진호 HD HPT 법인장은 "그만큼 시장에서 변압기가 귀한 몸이 된 것"이라며 "2029년 물량까지 계약서에 사인이 다 돼 있는데, 2030년 이후 물량 주문도 들어오고 있어서 쉴틈이 없다"고 말했다. HD HPT 공장이 바빠진 것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확대, 기업 리쇼어링 등의 영향이 크다.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쟁'에서 쓸 수 있는 '총알'인 변압기를 만들어만 달라. " 최근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현지 변압기 기업들에 이같은 당부를 한다. "전쟁 중에는 누구든 총알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함께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고려할 때 변압기 과잉 공급에 대한 우려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맥킨지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세계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 규모는 약 7조 달러(약 1경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AI 시대의 개화는 대한민국 제조업의 '골든(golden)'을 약속하고 있다. 실제 지난 10~11일(현지시간) 방문한 변압기 제조 업체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미국 공장은 향후 2~3년치 일감을 이미 쌓아둔 채 풀가동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HD현대일렉트릭은 몽고메리에 현지 최대 규모의 전력변압기 생산시설을 갖추고 지난 15년간 미국 시장에 1000여대에 달하는 변압기를 공급해왔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스마일 커브'(Smile Curve) 이론에서 부가가치가 낮다고 여겨지던 제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다. 글로벌 최고 수준인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 붐, 전력망 확충 수요와 맞물리며 반도체·변압기·전선 등 첨단 인프라의 핵심 공급망을 떠받치고 있다. AI 혁명이 소프트웨어 혁명을 넘어 한국 제조업 전성시대를 이끌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갈등 심화 등은 조선·방산·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도 한국 제조업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다른 제조업 선진국과 달리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순한 업황 사이클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수년 치 수주잔고가 쌓이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이 한국을 '세계 경제의 승자'로 표현하는 이유다. 한국 제조업의 저력은 축적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