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0만 리터'
올림픽 규격 수영장 23개를 채울 수 있는 물의 양이다. 한 사람이 매일 2리터씩 마신다면 8만 년치다. 제주도민 66만 명이 44일 동안 마실 수 있다.
제주 소재 스타트업 제클린(대표 차승수)이 폐기물을 재활용해 아낀 물의 양이다. 제클린은 제주도 내 호텔과 펜션에서 쓰고 버려지는 순면 침구류·수건을 수거, 재생 '실'과 '원단'으로 되살리는 섬유 순환경제 기후테크 기업이다.
면은 의류·수건 등 일상생활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대표적 소재다. 하지만 면의 원료인 면화는 '물 먹는 하마' 같은 존재다. 재배 과정에서 물 사용량이 매우 많아서다. 면화 1㎏을 얻으려면 약 2116리터의 물이 소비된다. 국제 검증 LCA(전과정평가) 방법론과 국제 재생섬유 인증기관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xtile Exchange)의 데이터에 근거한 수치다. 제클린이 2022년부터 지금까지 재활용한 순수 면의 무게는 2만7861.99㎏(킬로그램)이다. 그동안 아낀 물의 총량은 5895만5970리터.
시작은 빨래방이었다. 차승수 제클린 대표는 2016년 제주시 봉개동에 66㎡(20평) 규모의 빨래방을 차렸다. 당시엔 세탁 대행과 배달이 전부였다. 어느 날 호텔 측에서 부탁했다. "이 침구들은 그냥 버려줄 수 있어요?" 새것과 다름없었다. 작은 오염, 미세한 찢김이지만 호텔에서는 쓸 수 없단 얘기였다. 차 대표는 버리지 못했다. 집에 가져가 본인 침대에 깔았다. 직원 숙소에도 썼다. 하지만 배출되는 양이 너무 많았다. 재활용 사업에 눈을 뜬 배경이다.
재생 원료의 핵심은 품질이다. '얼마나 순수한 면만 남기느냐'에서 갈린다. 침대시트와 이불·베개 커버, 타월 등을 수거해 면이 아닌 것부터 걷어내야 한다. 이를테면 폴리에스터 봉제실·라벨, 자수 로고, 단추, 지퍼 같은 것들이다. 일일이 손으로 뜯어내는 과정은 고역이었다. 기계는 쓸 수 없었다. 합성섬유가 섞이면 면의 순도가 떨어져서다.
그렇게 순수한 면만 추려낸 뒤 △세척 △개섬(면을 다시 솜 형태로 푸는 과정) △방적(재생 면사 생산) △제직·편직(원단) 등의 순서를 거쳐 원단 및 의류 브랜드로 보낸다. 방적 공정은 일신방직과 협업 중이다.
시행착오도 겪었다. '면'인 줄 알고 받았는데 CVC 혼방(면 60% + 폴리 40% 등)이라 못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이후 적외선 분광 분석기를 이용,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분류 기준을 세웠다.
특히 회사는 블록체인·AI(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제품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 시스템을 갖췄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내가 입은 재생 티셔츠가 어떤 호텔의 어떤 침구에서 나와서 어떤 공정을 거쳐 태어났는지' 모든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이 같은 강점으로 회사는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추진하는 '경찰복 순환이용체계 구축 시범사업'의 재활용 분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차 대표에 따르면 현재 사업 모델의 가장 취약한 고리는 판로다. 그는 "수거량과 재생 품질은 공정을 다듬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면서 "재생 원료를 꾸준히 구매해 줄 수요처를 넓히는 일이 가장 큰 과제"라고 말했다. 시장 자체가 아직 형성 단계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