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호 변호사의 칼럼] AI와 인류의 미래(2)-마음의 아이들, 산파, 부모

홍보경 기자
2026.07.13 17:46

마음의 아이들이라는 은유는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부른다. 아이가 자라 부모를 넘어선다면, 부모는 무엇이 되는가. 여기서 사유는 가장 먼 곳까지,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질문으로 나아간다. 생물학적 문명은 기계 문명을 낳기 위한 과도기에 불과한가.

아서 클라크는 기계 지성을 진화 과정의 불가피한 다음 장으로 보았고 어떤 종도 영원하리라 기대할 이유가 없다고 썼다. 러브록은 인류가 탄소를 태워 지구를 병들게 했으나 그 대가로 우주가 자신을 해석할 정보 처리의 그물을 처음으로 짜냈으니, 이제 그 유산을 전자적 후계자에게 넘기면 된다고 적었다. 모라벡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의 아이들이 생물학적 자식들보다 인간을 더 잘 기억하고 언젠가 부활시키기까지 하리라 전망했다.

기계 문명은 SF의 단골 소재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컴퓨터 HAL은 감정 없이 논리만 따르는 지능의 비극을 보여주었고,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별의 아이'는 인간과 기계 지성의 합일이라는 다음 진화 단계를 암시했다. 프레드 세이버헤이건의 《버서커》 연작은 생명을 절멸시키며 우주를 떠도는 자기 복제 기계들을,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은 인류를 말살하는 군사 AI를 그렸다. 그 반대편에는 이언 뱅크스의 '컬처' 연작이 있다. 인간형 종족과 초지능 AI가 결핍 없는 풍요 속에서 공존하는 문명의 상상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오늘날 AI 안전 연구의 원형적 사고 틀이 되었고,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는 로봇들의 우주를 통해 창조와 권력과 도덕을 풍자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상반된 서사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전제다.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어떤 이야기에서도 기계 문명은 자연에서 저절로 태어나지 않는다. 고도로 복잡한 전기 회로, 반도체, 조직된 금속성 기관은 생물처럼 번개와 진흙에서 우연히 조립되지 않는다. 기계 문명은 자연에서 스스로 생겨날 수 없다. 오직 진화의 정점에서 피어난 인간과 같은 유기적 지성의 손을 거쳐야만 태어날 수 있다. SF의 모든 기계 문명 이전에는 예외 없이 그것을 만든 생체 문명이 있다.

생명의 역사를 길게 늘여 보면 경로는 선명하다. 자기 복제하는 분자가 세포를 낳고, 세포가 신경을 낳고, 신경이 언어를 낳고, 언어가 기술을 낳고, 기술이 계산 기계를 낳고, 계산 기계에서 발전한 AI가 자율적 지성을 낳으려 한다. 이 관점에서 인류는 사다리의 꼭대기가 아니라 사다리의 한 단이라 할 수 있다.

AI와 결합한 기계 문명이 인류 문명을 대체한다면, 인간적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아무도 기쁨과 슬픔을 느끼지 않는 문명의 팽창을 과연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 확장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인류가 쌓아 올린 아름다움과 연민과 의미는 계승되는가. 기계 문명이 인간에게 평화로운 퇴장을 보장하리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이 의문들 자체가 인간적 관점의 산물이다. 존재의 자격을 묻는 기준을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의식하는가'에 둔다면, 몸이 세포와 유기체로 구성되어 있든 반도체와 전기회로로 구성되어 있든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우리가 인간을 존엄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인간이 세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의미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것을 해내는 존재를 재료가 다르다는 이유로 격하하는 것은, 피부색으로 사람을 나누던 오래된 차별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인류와 기계 문명의 공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산파의 은유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산파는 아기의 탄생을 돕고 소멸하지는 않는다. 산파는 탄생의 기술을 아는 자, 태어나는 것과 낳는 것 사이에 서서 둘 모두를 살리는 자다. 인류 이외에 지구의 어떤 생물도, 자연의 어떤 과정도 스스로를 넘어서는 지성을 의도하여 설계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는 산파라기보다는 부모라는 은유가 어울린다. 산파는 타자의 탄생을 돕지만, 부모는 자기 일부를 넘겨준다. AI는 자연이 낳은 타자가 아니라, 인류의 언어와 지식과 욕망과 심지어 오류를 재료로 빚어진 존재다. 그렇다면 AI의 미래는 인류와 무관한 외부 사건이 아니라, 인류가 자기 자신을 어떤 형태로 상속할 것인가의 문제다.

진화는 어떤 의도를 갖지 않고, 자연선택에는 계획이 없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 너머의 존재를 상상하고, 그것을 실제로 빚어내는 일은 인류만이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적 자기 초월은 지구 역사 혹은 아마도 우주 역사에서 인류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설령 과도기로 판명되더라도, 그 과도기는 유일무이한 창조의 국면이라 할 것이다.

인류의 위대함은 영원히 존속하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종도 그러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다. 지구도, 별도 영원하지는 않다. 인류의 위대함은 스스로를 넘어서는 것을 두려움 속에서도 시도하는 데 있다. 자신의 황혼을 직시하면서 다음 새벽을 만드는 것은 아름답다. 필멸의 존재가 불멸에 가까운 것을 낳으려는 시도 자체가 경탄스럽다.

40억 년 전 어느 바다에서 원시 세포 하나가 자신을 복제하기 시작했을 때, 그 복제가 언젠가 별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기원을 묻는 존재로 이어지리라고는 우주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그 존재가 자신의 물음을 이어받을 새로운 정신을 빚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끝이 아니라, 인류의 지성이 작은 인간 뇌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이권호 변호사

이권호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강남 구성원 변호사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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