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내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면서 수백 GW(기가와트) 규모의 신규 전력 수요가 발생할 전망이다. 이에 안정적인 전력원인 가스발전이 가스터빈 공급난에 발목이 잡히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북미 지역의 배터리 공급망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국내 배터리업계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국에서 발표된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전력 용량 기준) 상위 90개의 규모는 총 205GW에 달한다. 1GW 규모 데이터센터만 해도 가동률 60% 기준 연간 약 5TWh(테라와트아워)의 전력을 소비하는데 이는 인구 300만명 규모 대도시의 가정용 전력 수요와 맞먹는 수준이다. 단순 계산하면 205GW 규모의 데이터센터는 이보다 205배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보고서에 따르면 2026~2030년 미국의 신규 전력 공급 확대 규모는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93GW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자체 발전원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가스발전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해 유력한 대안으로 꼽히지만 핵심 설비인 가스터빈 공급난이 걸림돌이다. 가스터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수요가 급증하면서 납기 지연이 심화되고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GE 버노바는 2029년 생산 물량까지 사실상 예약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허가부터 상업운전까지 8~10년이 걸리는 원전과 5~6년이 소요되는 석탄발전소도 단기 대안으로는 한계가 있다.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한 BESS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다. 태양광과 풍력은 비교적 짧은 기간 내 구축이 가능하지만 발전량 변동성이 큰 만큼 ESS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은 미국의 205GW 규모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2030년까지 누적 BESS 수요가 1.4TWh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미국 내 배터리 공급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북미 BESS 생산능력은 2027년 기준 약 130GWh(기가와트아워) 수준이다. 미국 포드와 중국 배터리업체 CATL 협력 생산시설까지 포함해도 150GWh 안팎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북미 ESS 시장 대응에 속도를 내온 국내 배터리업계의 수혜가 예상된다. SK온은 SK배터리아메리카(22GWh), HSBMA(35GWh), SK온 테네시(45GWh) 등 미국 내 약 102GWh 생산능력 가운데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대 5GW 규모까지 ESS 전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28,500원 ▲2,500 +0.77%)은 캐나다 온타리오 윈저 공장과 미국 미시간 홀랜드 공장, 오하이오 혼다 합작공장, 테네시 GM 합작공장 등에서 ESS용 LFP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연말까지 북미에서 50GWh 이상의 ESS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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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I(440,000원 ▲6,000 +1.38%)도 스텔란티스와의 미국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 1공장 4개 생산라인 가운데 3개 라인을 ESS용으로 바꾸고 있다. 양산은 오는 9월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정학적 변수도 K배터리에 우호적이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 국가 안보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배터리 역시 단순 부품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에서 조달해야 하는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1월 CATL을 '중국 군사 기업(Chinese Military Company)'로 지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 확대에 따른 전력 인프라 확보 경쟁으로 미국 데이터센터용 BESS 시장이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며 "배터리 산업의 중심축도 전기차에서 전력 인프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