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다 기술 추격'
중국 D램 업체 CXMT(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의 핵심 성장 전략이다. 설립 10년 만에 세계 D램 시장 4위로 올라선 배경에는 기존 성장 공식을 뒤집은 CXMT의 추격 전략과 1000억달러(143조원)가 넘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이 있다. 전례 없는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품귀 상황도 성장 기회가 됐다.
4일 전자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HP와 에이수스(ASUS), 에이서 등은 노트북 일부 제품에 CXMT D램을 소량 채택하기로 했다. 이들 업체는 올해 메모리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CXMT 제품의 성능을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규모는 크지 않지만 중국 업체가 글로벌 PC 제조사에 D램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6년 설립된 CXMT는 2019년 중국 기업 최초로 8GB(기가바이트) DDR4(더블데이터레이트4)를 독자 생산한 이후 LPDDR(저전력D램)4X(2020년), LPDDR5(2023년), DDR5(2024년) 등을 잇달아 출시하며 제품군을 빠르게 확대했다. 최근에는 LPDDR6 연구 검증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CXMT가 단기간에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7%까지 성장한 것은 '세대도약형 연구개발' 전략 때문에 가능했다. 선두 기업을 추격하기 위해 기술 세대를 건너뛰거나 개발 기간을 최대한 압축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CXMT는 지난해 LPDDR5X 양산을 시작했고, 현재는 LPDDR6 양산도 추진하고 있다. LPDDR6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양산을 준비 중인 차세대 제품이다. 원가와 수율, 성능 등에서는 여전히 격차가 크지만 수익성보다 기술을 우선하는 전략으로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DDR4 생산을 중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급 부족으로 DDR4 가격이 지난해에만 10배 급등했음에도 CXMT는 수익성이 검증된 제품 대신 DDR5와 LPDDR5X 생산에 집중했다. DDR4는 과감하게 생산을 접었다. 단기 실적보다 차세대 기술 확보를 선택한 것이다.
CXMT는 최근 3년(2023~2025년) 동안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에 1852억위안을 투입했다. 같은 기간 매출(951억위안)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난해말 연구개발 인력은 6259명으로 전체 직원의 32%를 차지한다. CXMT는 창사 이후 지난해 처음 77억위안의 흑자를 기록했다.
기술 확보 과정에서는 공격적인 행보도 이어졌다. 해외기업의 특허를 구매하거나 사용 계약을 적극적으로 맺었다. 한국 법정에서는 CXMT로 국내 반도체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회사도 투자설명서를 통해 "대규모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 부담, 규모의 경제가 아직 충분히 실현되지 않아 생산원가가 높다"고 밝혔다. 일부 서버용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보다 가격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CXMT와 같은 전략을 일반 기업이라면 지속하기 어렵다. 매출보다 많은 투자를 이어가고, 가격 경쟁력까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이 있어서다. CXMT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전략 속에서 설립된 기업으로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빅펀드)을 비롯한 국유 자본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1·2기 빅펀드를 통해 총 477억달러를 조성했다. 여기에 2015~2018년 지방정부가 만든 17개 반도체 펀드 규모(694억달러 추산)까지 합하면 직접 지원 규모는 1000억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는 477억달러 규모의 3기 빅펀드를 운영 중이며 AI(인공지능) 반도체와 HBM(고대역폭메모리)도 핵심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중국 내 거대한 IT 생태계도 CXMT 성장의 기반이다. 알리바바클라우드와 바이트댄스, 텐센트, 레노버, 샤오미 등 대형 '레드테크(중국의 국가 주도형 산업기술 체계)' 기업들이 안정적인 수요처 역할을 하고 있다. CXMT의 제품은 내수 시장에서 대부분 소비된다.
중국 정부는 공공조달 과정에서 국산 반도체를 실제 가격보다 낮게 평가하는 우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 자국산 칩을 구매한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지방정부도 적지 않다. 최근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까지 겹치면서 CXMT의 시장 입지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