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한국을 찾은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과 만나 소형모듈원전(SMR) 협력 강화에 나선다. SK와 HD현대는 2008년 게이츠 이사장이 설립한 차세대 원전기업인 테라파워의 주요 주주다. 향후 테라파워의 원자로 상용화와 글로벌 공급망 구축 과정에서 맡게 될 역할이 한층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게이츠 이사장은 내일(14일) 최 회장과 정 회장을 각각 만날 예정이다. 앞서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공동으로 2억5000만달러를, HD한국조선해양도 같은 해 11월에 3000만달러를 각각 테라파워에 투자했다.
최 회장과 게이츠 이사장은 이번 회동에서 SMR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안정적인 전력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에너지 분야에서 추가 협력안을 타진한다. 최 회장은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주목하며 에너지 경쟁력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지난 6월 일본에서 열린 닛케이포럼에서도 "에너지 협력의 당위성은 에너지는 안보"라며 "AI 전환으로 전력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에너지 비용을 낮춰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는 이런 맥락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 중 하나로 SMR 사업을 추진해왔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보다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이고 주요 설비를 모듈화한 차세대 원자로다. 대형 원전과 비교해 건설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입지 활용도가 높아 AI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수요처에 안정적인 전력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위해 2022년 5월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사업 기반을 마련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SK와 테라파워에 투자하며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 관련 사업기회를 확보했다.
이어 정 회장도 게이츠 이사장과 만나 테라파워와 추진해온 육상 SMR 개발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해 3월 미국과 8월 서울,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이번 회동에서도 나트륨 원자로의 공급망 확대와 상업화를 위한 추가 협력 방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정 회장과 게이츠 이사장은 잇단 회동을 거치며 협력을 구체화했다. 지난해 3월 미국에서는 '나트륨 원자로의 상업화를 위한 제조 공급망 확장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서울에서 다시 만나 나트륨 원자로의 공급망 확대와 상업화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실제 사업도 본궤도에 올랐다. HD현대는 2024년 12월 테라파워로부터 원통형 원자로 용기 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해 현재 제작 중이다. 해당 원자로 용기는 테라파워가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345MW(메가와트) 규모로 설치하는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SFR)에 탑재될 예정이다. SFR은 SMR의 한 종류로, 안전성과 기술 완성도가 높고 기존 원자로보다 핵폐기물 용량이 20분의 1 수준으로 적다는게 특징이다.
올해 5월에도 협력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HD현대중공업은 테라파워와 '나트륨 원자로 공급에 대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테라파워의 나트륨 원자로 주기기의 핵심 설비를 제작·공급하는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SMR 사업의 진행 상황과 향후 원전 사업의 협력 방향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