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양호 한진그룹 선대회장의 장녀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모태 기업인 정석기업 보유 주식 전량을 매각한다. 과거 경영권 갈등을 빚었던 남동생 조원태 회장측이 이를 인수할지 주목된다.
만약 남매가 지분 매매를 통해 '화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한진그룹에는 호재다. 특히 호반그룹이 꾸준히 지분을 늘려오며 경영권을 위협하는 가운데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대결 구도에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2일 재계 등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 측은 최근 정석기업 지분 매각을 위해 복수의 인수 의향자들과 접촉하고 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정석 조중훈 회장의 호를 딴 회사로 서울 한진빌딩 등 그룹의 부동산 관리·임대사업을 한다. 조 전 부사장 4.59%, 조원태 회장 3.83%, 한진칼 60.49% 등 총수 측이 100% 소유한 비상장사다.
정석기업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조 전 부사장의 지분을 누가 살지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외국계 경영참여형 PE(사모펀드) 여러 곳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거래가 성사되면 한진그룹의 뿌리 기업 지분이 해외로 넘어가는 첫 사례가 된다.
정석기업은 2021~2025년 조 회장 등의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자금 마련을 위해 고려아연에 지분 일부가 팔렸던 적은 있지만 이 역시 지난해 한진칼이 다시 사들였다. 그만큼 외부 지분 없이 오너 일가가 100% 지배력을 행사해왔다.
이 때문에 조 회장측이 조 전 부사장의 지분을 인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경영권을 놓고 충돌했던 남매가 화합하는 모양새가 연출된다. 앞서 조 전 부사장은 KCGI(강성부펀드), 반도건설 등 3자 연합 공세를 펴면서 남동생 조 회장과 맞섰으나 경영권 경쟁에서 졌다. 현재 조 전 부사장도 해외에 팔기보다는 조 회장측에 매각하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따져볼 때도 조 회장측의 인수 필요성이 거론된다. 경영참여를 내세우는 사모펀드 등이 그룹의 모회사이자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가져왔던 비상장 회사에 주주로 들어오려는 이유는 명확해서다. 재계에서는 회계장부 열람 청구권 등 상법상 보장된 주주 권리를 최대한 활용해 한진그룹을 압박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조 회장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100% 지분을 가지고 지금까지 운영해왔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실제 조 회장 쪽에서 조 전 부사장의 지분 인수 여부와 방법 등에 대해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조 전 부사장의 지분 가치는 얼마나 될까. 비상장 회사의 특성상 시장가격을 바로 산출 할 수는 없다. 다만 고려아연과 거래가 하나의 기준은 될 수 있다. 한진칼은 지난해 고려아연으로부터 520억원에 정석기업 지분 12.22%를 매입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세 등을 고려할 때 조 전 부사장의 지분 가치가 고려아연 거래 때보다는 높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당시 매매가 우호 세력 간 일시적 거래 성격이 강했던 점도 작용한다. 영원히 소유권을 넘기는 개념이라기보다 재매입을 전제로 사고판 거래여서 깐깐하게 가격 산정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의 시선은 호반과 경영권 분쟁이 터졌을 때 미칠 영향을 향하고 있다. 호반건설을 필두로 한 호남 기반의 호반그룹은 '단순투자' 명분이지만 지속적으로 지주사 한진칼의 지분을 사들여 20.15%를 확보했다. 조원태 회장 측 지분 20.57%와는 불과 0.4%포인트(p)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론 현재는 조 회장이 우호 지분을 포함해 과반 지분율을 가지고 있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보유한 10.58%는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머지않아 매각이 불가피하다. 이 지분을 누가 사느냐에 따라 경영권 확보 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호남 정치권을 중심으로 현실성을 떠나 시나리오는 끊이지 않고 회자된다"며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산업은행의 지분 매각이 분수령이 되기 때문에 결국 국민 여론이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조 전 부사장의 지분을 조 회장이 인수하는 '남매 화합'의 구도는 한진그룹에도 긍정적이다. 집안 싸움하는 오너 일가보다는 화해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매각 작업과 관련해 조 전 부사장 측 대리인인 이주헌 법무법인 송율 변호사는 지분 매각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