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케이블방송사업자(MSO)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문제를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수합병에 반대하는 측은 이 합병이 방송시장의 공정성과 다양성, 객관성을 해친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서는 이런 사업자간 이해관계를 셈법에 넣지 않고, 기술 진화적 측면에서 이번 합병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따져보려 한다.
통신과 방송은 기술진화의 산물이다. 통신은 1794년 프랑스의 클로드 샤프의 신호식 표식기에서, 전화는 1854년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무치의 기계식 전화기에서, 방송은 1925년 영국발명가인 존 로지 베어드의 기계식 TV에서 출발해 진화를 거듭한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이런 진화의 연장선에 있다.
경제와 기업과 기술의 진화 과정을 잘 설명한 것이 1980년대 맥킨지의 리처드 포스터가 쓴 '기술혁신 :공격자의 이점'이라는 책이다. 이 책엔 기술의 자연적 생명주기를 'S커브'로 설명했다.
신기술 초기에는 우상향으로 천천히 횡보세를 보이며 성장하다가, 투자기와 다양한 시험기를 지나면 기술의 성과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곡선을 타고, 성숙단계에 접어들면서 성과 곡선은 완만해져 'S커브'를 갖는다는 것.
이런 S커브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투자수익이 감소할 때, 뒤 이은 새로운 S커브에 대한 요구가 나타난다.
S커브 측면에서 보면 방송과 통신, 신문 등 커뮤니케이션 부문의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어 수익이 떨어지는 단계로 새로운 S커브를 찾아야 할 시기다.
에릭 바인하커 옥스퍼드 마틴스쿨의 신경제사상연구소 이사는 자신의 저서 'THE ORIGIN OF WEALTH(富의 기원)'에서 이런 진화는 물리적 기술(TV 수상기와 전화기의 발명과 기술진화)과 사회적 기술(서비스 구조의 변화 등) 활동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방송기술과 통신기술은 물리적 기술 진화로 성장을 해왔고, 그 성장의 한계에서 사회적 기술인 방통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이어가야 지속 가능하다는 의미다. 새로운 S커브가 두 서비스간 융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진화과정에선 항상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슨은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왜 하나의 S커브에서 새로운 S커브로 옮겨 가는 것이 어려운지를 설명했다.
기존 헤게모니를 쥔 기업은 과거의 성과가 장래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헛된(?) 기대로 기존 물리적 기술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결국 혁신기업에 당하기 십상이다.
지금의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미국 반도체기업 원조인 페어차일드반도체는 기존 S커브인 바이폴라반도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미래기술인 금속산화물반도체에 밀려 세계 최고 기업의 명성을 한순간에 잃었다.
브라운관 TV의 대명사였던 소니도 LCD와 PDP의 출현에도 여전히 브라운관에 미련을 떨치지 못해 TV 1위 자리를 삼성에 내줬고, LCD 원조인 샤프는 대만 기업에 팔렸다. 노키아도 피처폰 수익에 매몰돼 스마트폰 준비에 뒤지면서 명성을 잃었다.
지금 세계 방송 통신 시장은 새로운 S커브인 방통융합의 흐름을 타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통신업체 AT&T가 위성방송사업자인 DirecTV를 485억달러에 인수해 미 FCC로부터 합병 승인을 받았다. 이에 앞서 스페인 통신기업 텔레포니카는 위성방송사업자인 커널플러스를, 프랑스 케이블 사업자인 누메리 케이블은 자국통신기업 SFR을 인수합병했다. 벨기에에선 텔레넷과 BASE의 승인 심사를 진행 중이다.
우리 내부에서 SK와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막는다고 해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진화를 멈출 수는 없다.
텔레비전이라는 말은 '멀리'라는 그리스어 'Tele'와 '본다'라는 라틴어 'Videre'의 합성어라고 한다. 부디 발 아래 밥그릇만 보지 말고, 멀리 미래의 시장을 보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