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다섯 살. 하지만 철학과 목표만큼은 50년 된 브랜드 못지않게 뚜렷하고 원대하다. 6조원 매출의 중국 최대 신발 유통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중국 남성화 시장 진출도 앞두고 있다. 2012년생(生) 구두 브랜드 '스펠로'(Spello) 얘기다.
지난 3일 오후 TBH글로벌(옛 베이직하우스) 본사에서 '스펠로' 창업자 이윤호 TBH글로벌 이사를 만났다. 타 브랜드와의 차별점을 묻자 "사람들의 얼굴이 다르듯 브랜드도 저마다 다른 게 당연한 것"이라며 "달라야 살아남는 것이 브랜드"라고 말했다. 독자적인 색깔로 승부를 보겠다는 확고함과 자신감이 드러났다.
'남다른 신발'은 국내 패션 회사는 물론 중국 회사에서도 눈독을 들였다. 지난 2014년 베이직하우스, 마인드브릿지 등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는 패션 기업 TBH글로벌에 인수된 데 이어 6조원 매출의 중국 1위 신발 유통기업 벨르인터내셔널홀딩스(이하 벨르)가 현지 남성화 시장 공략을 위한 파트너로 선택했다.
◇획일화된 남성화에 갈증…"다르게 만들어 보자"=대학에서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이 이사는 '열정페이'를 받으며 디자이너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수입 브랜드에서 홍보, 영업, 매장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거쳐 국내 제화 브랜드 소다에 입사하며 진짜 길을 찾았다. 하지만 수년간 MD(상품기획자)로 일하며 천편일률적인 남성화 시장에 갈증을 느꼈다.
"백화점 남성화 매장들만 둘러봐도 독자적인 색깔의 브랜드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산업 특성상 여성화보다 남성화에서 많은 이익이 남는 구조라 회사들이 안정적인 수입원인 남성화에 다양한 시도를 하기 꺼려하죠. '우리만의 색'이 있는 브랜드를 만들자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 '스펠로'를 설립했습니다."
회사에서 느꼈던 갈증을 '스펠로'를 통해서 풀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 결과 원자재 재고를 줄일 수 있는 파티나 기법(천연 가죽 수제 염색)을 통해 기성 구두에서 볼 수 없는 독창적인 디자인의 제품이 탄생했다. 신는 사람에게 행운을 준다는 의미를 담아 실리콘을 위시본(wishbone, V자 형상의 뼈) 형태로 만들어 넣은 제품 등 신선한 시도가 고객 시선을 끌었다.
단독 매장 없이도 입소문을 탔고 론칭 직후 신세계백화점 내 신진 브랜드 편집매장 '신세계앤코'에 입점하며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과 태국 매장에도 제품을 선보였다. 이 이사는 "처음부터 '글로벌 브랜드'가 목표였다"며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는 것이 국내 성장의 발판이라 생각해 직접 발로 뛰면서 해외 판로를 넓혔다"고 말했다. '글로벌 대표 주자'로 키울 브랜드를 찾고 있던 TBH글로벌이 2014년에 스펠로를 인수했다.
◇브랜드 재정비…프리미엄 채널 공략=TBH글로벌은 인수 후에도 스펠로만의 철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매출 증대를 위해 다른 브랜드와 비슷해지지 말라는 것. 기존 해외 매장도 철수하고 오직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다. 인수 3년차인 올해부터 실질적인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수된 후 확실히 좋아졌어요. 제화 사업은 자금력이 필요한데 그 부분이 해결됐죠. 브랜드 철학을 유지하면서 매출 걱정 없이 온전히 마음 놓고 R&D(연구·개발)에 몰두할 수 있게 배려해줬죠. 그 덕에 1~2년만에 제품이 두세 단계는 발전한 것 같습니다."
현재 가로수길점, 신세계 센텀시티점, 현대 판교점, 송도 현대 프리미엄아울렛 등 프리미엄 채널 위주로 6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오는 9월 오픈 예정인 스타필드 하남점을 비롯해 올해 9개까지 매장을 열고 50억원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다.
◇中 넘어 해외로…여성화 등 라인 다각화도=이달 말에는 중국 전역 2000여개 매장에 스펠로 제품이 판매된다. 벨르의 인기 여성화 브랜드 '타타'에서 처음 선보이는 남성화 라인 '타타 by 스펠로'의 디자인과 생산을 맡았다. 벨르가 이제 막 커지기 시작한 중국 남성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디자인과 기술력을 갖춘 스펠로에 손을 내밀었다. 이 이사는 "기존 스펠로 제품의 중저가 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라며 "거대한 중국 시장에 우리 제품을 먼저 테스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을 넘어 유럽 등 다양한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리미엄 박람회에 참가해 유럽 시장에서의 가능성도 점쳤다. 200만원대 고가 제품을 비롯해 10만원대, 30~40만원대 등 다양한 가격대 제품과 여성화, 가방 등 제품 라인도 넓히고 있다. 광고를 하는 대신 스펠로와 철학이 비슷한 다양한 인디 브랜드와 협업하는 '제로 스펠로' 프로젝트를 통해 고객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 이사는 "스펠로는 위트와 낭만이 깃든 디자인을 추구한다"며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바로 고객들이 스펠로를 다시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협업 과정에서 우리의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추격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걱정 없다"며 "그들이 쫓아오면 우린 그보다 더 앞서나가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