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게임 소재는 1970~80년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를 다닌 세대에게 친숙한 편이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흔치 않던 시절 코흘리개들이 동네 공터나 골목길에 모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겼던 놀이들이다.
구슬이나 딱지(주로 동그란 딱지)는 그 당시 화폐이자 권력이었다. 몇개를 건네주고 하드(막대기에 끼운 빙과)를 받아먹기도 했고, 또 게임에 동참하기 위해 호빵 절반을 내어주기도 했다. 이것들이 많으면 늘상 추종자들로 북적였고, 없으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일쑤였다. 부잣집 아들래미는 부족한 베팅 기술을 동네 문방구에서 용돈으로 충당하곤 했다.
건달에게도 순정이 있듯, 코흘리개에게도 의리는 있었다. '깐부'에게는 구슬과 딱지를 빌려주거나 무상으로 줬다.
#. 상대적으로 자본에서 자유로웠던 놀이 중 하나로 오징어게임이 있었다. 주로 오징어가이상(가이생, 가생)으로 불렸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개전(開戰)을 뜻하는 일본말 가이센이 붙여진 것 같다. 이후 오징어게임, 혹은 놀이로 표현하곤 했다.
오징어게임은 사실 철저한 단체게임이다. 힘 뿐 아니라 기술과 전략을 두루 갖춰야 하는 놀이여서 주로 남자아이들이 즐겨했다. 만만한 상대를 골라 맞대결을 펼치기도 했고, 스크럼을 짜고 대규모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덩치는 작았지만 외발로 1대1 싸움에서 좀처럼 지지않는 녀석이 있었는데, 디딤발을 오른발로 바꾸고나서부터 새로운 기술을 많이 습득했다며 아이들을 모아두고 비법전수를 했던 기억도 있다.
#. 놀이를 하면서 경제와 사회를 경험했던 시절은 '뉴트로'(New+Retro)라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한국 콘텐츠로는 처음으로 미국 넷플릭스 1위에 오른 것을 두고 혹자는 BTS의 빌보드 1위에 버금가는 초대형 사건으로 보기도 한다. 1980년대 상황으로 보자면 '빽투더퓨쳐'나 '인디아나존스'를 꺾은 셈이다.
뉴트로 바람은 비단 콘텐츠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패션업계에선 1990년대 유행하던 청바지 브랜드 '리'와 '스톰'이 재출시됐고, 당시 유행한 힙합 패션은 오버사이즈나 와이드팬츠로 재탄생했다. 반면 2000년대 중반부터 유행한 스키니진은 '엄마 바지'라는 굴욕적인 별칭이 붙었다. 젊음의 상징이었던 걸그룹 소녀시대가 스키니진을 입고 나온지 14년이 됐으니 격세지감이다.
가장 바람이 거센 곳은 식음료업계다.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을 시작으로 두꺼비 열풍이 불더니 이제는 곰표, 말표, 백양 맥주가 수입맥주 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몇번이나 주인이 바뀐 해태의 간판 아이스크림 부라보콘은 10년만에 TV광고를 재개했고, 신세계푸드는 노란 봉투의 옛날통닭 시리즈로 재미를 봤다.
#. MZ세대(1980~2000년 출생 세대)에게 '오징어게임'의 평가는 엇갈린다. 재미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신파라거나 표절작이란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세대간 경험을 공유할 소재가 생겨났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유튜브의 대중화가 이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빠세대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세대간 경험 격차는 줄어들었다.
문제는 경험의 공유만으로 세대간 공감대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뉴트로 유행의 핵심은 '뉴'다. 새로운 게 없다면 뉴트로가 아니라 레트로다. 향수나 추억으로 만들어진 인기는 오래지 않아 식게 마련이다. 아재 배우를 주연으로 아재 감성의 소재를 썼음에도 '오징어게임'이 주목받는 것은 기존 드라마에 없는 새로운 설정과 독특한 세트, 뚜렷한 주제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특히 해외에선 게임소재나 신파적인 스토리 조차 '뉴'로 받아들여진다.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도 여기에 있다. 펀슈머(fun·재미+consumer·소비자) 제품의 인기는 단발성에 그칠 공산이 크다.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거듭나고 있는 MZ세대를 잡으려면 새로운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 40~50대가 오징어게임을 통해 당시 세대를 회상하는 것처럼 이들 세대가 공유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줘야 승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