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을 둘러싼 중동 정세가 악화하면서 국내 중견기업들이 원가와 물류비용 관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 가격에 대한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연초에 세운 경영 전략을 사수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며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레미콘·건자재·제지 등 중견 제조업체들은 이란을 둘러싼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에 따른 비용 상승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대응 전략을 살피고 있다. 에너지 비용과 물류비 상승이 동시에 들이닥치면서 수익성 압박 단계까지 도달했다는 우려가 공통적으로 나온다.
유진그룹을 비롯한 레미콘 업계는 유가 상승과 함께 건설 경기 둔화라는 국내외 변수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산업이다. 대형 레미콘 업체들은 운송사업자의 유류비를 전액에 가깝게 부담하는 구조라서 유가가 오르면 운반비 부담이 곧장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진다.
고환율로 철근 등 수입 건자재 가격이 오르면 건설사들이 공사를 늦추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을 키운다. 공사 중단은 레미콘 수요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과 건설 경기 악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자재·도료 업체들은 공급망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로 전방 산업의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중동 사태까지 겹치며 비용 부담 역시 커지는 모양새다. 페인트의 경우 제조 원가의 약 50~60%를 에폭시 수지나 유기용제 같은 석유 관련 제품이 차지한다.
KCC 관계자는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의 불확실성과 환율 변동 가능성을 계속 반영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대응이 가능한 수준이지만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구매처를 다변화하고 적정한 재고 운영으로 생산·공급을 관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 시멘트 제조사 관계자는 "원가 상승으로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업계 전반이 다같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보니 가격 인상 얘기를 꺼내기는 시기적으로 어렵다"면서도 "전쟁이 빨리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제지업계도 에너지 비용과 물류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돼있어 위기에 놓였다.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펄프를 끓이고 수분을 건조하는 스팀 공정이 반복되는데 이때 대량의 열에너지가 필요하다.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제조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구조다.
불안정한 해상 물류 환경과 환율 상승도 제지업계에는 큰 변수다. 대부분 제지업계가 펄프를 수입해 쓰고 있는데 펄프는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무조건 해상 컨테이너로 운송해야 한다. 해상 운임이 폭등하는 가운데 고환율은 달러 지급 수입 결제 대금의 상승으로도 이어진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중동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해상운송 경로 조정에 따른 물류비와 운송기간 변동 가능성,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라며 "선복 확보와 운송 계약 협의 등 내부적인 관리 아래 안정적인 공급과 리스크 최소화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0달러 안팎, 원/달러 환율은 1460~1470원 선에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중동 노선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6일 기준 2287로 전주 대비 72.3%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