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와 이해관계자에게 기업회생 절차 중단 결정에 대해 오는 30일까지 의견 송부를 요청했다. 회생계획 폐지, 즉 청산(파산) 결정을 염두에 둔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다. 앞서 홈플러스가 제출한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을 수행하기 위한 2000억원 긴급운영자금(DIP) 조달계획을 제출하지 못해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지난해 3월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한 뒤 그해 11월까지 5번 회생계획안 제출기한을 연장해줬고 12월29일 홈플러스 관리인이 제출한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도 두 차례 가결 기한을 늦춰 1년 3개월 이상 결정을 미뤘다.
현행법상 회생계획안은 개시일로부터 1년 이내 가결되야 한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무너지면 1만여명이 넘는 직원과 수 천여개 입점 업체, 중소 납품 업체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아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예외 사유'로 보고 충분히 시간을 준 것이다. 그럼에도 경영진과 최대주주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홈플러스는 파산 위기에 놓였다.
유통 업계에선 홈플러스 위기의 본질은 업황 침체에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서란 지적이 나온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에 대응하려면 선제적인 점포 구조조정과 시설 투자가 필요한 데 사모펀드인 MBK가 인수한 뒤 투자금 회수와 비용 절감에 치중하면서 점포 경쟁력 강화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비용 절감을 위해 점포 수를 줄인 건 유통업 수익의 본질인 '규모의 경제'를 포기했단 비판도 있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M&A(인수합병) 전략도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6월부터 홈플러스 전체 사업을 매각하는 인가 전 M&A를 추진했는데, 우선 매수 희망자를 확보한 뒤 공개 입찰을 진행하는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을 선택한 게 패착이었다. 최대한 매각가를 높이겠다는 전략이었지만 10월까지 원매자를 찾지 못했고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4개월이란 시간을 허비했다.
이어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공개경쟁 입찰 결과도 홈플러스의 시장 가치를 더 떨어뜨린 악재가 됐다. 예비 입찰에 참여한 2개사가 유통업 경험이 전무한 중소 업체였고, 이 중 한 기업은 자본잠식 상태란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비판 속에 해당 업체들은 결국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최종 유찰됐다.
통매각이 잇따라 실패하자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29일 제출한 최종 회생계획안에서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분할 매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동시에 부실 점포 추가 폐점, 3000억원 규모 DIP 금융 지원 등 경영 정상화 계획을 포함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하림그룹이 지난 4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지난달 초 하림그룹 계열사 NS홈쇼핑과 1206억원 규모의 영업양수도 본계약을 체결했다. 하림그룹은 지난 22일 매각대금을 완납했다. 잇단 M&A 실패로 당초 회사 측이 기대한 매각 대금 3000억원을 크게 밑돈 금액이어서 그동안 밀린 직원 급여와 납품 대금을 충당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MBK는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한 2000억원의 DIP 대출 조달 과정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를 보였다. 자금 지원이 절실한 '채무자'가 맞느냐란 의문이 들 정도로 돈 줄을 쥔 채권자에게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MBK는 이달 초부터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이하 메리츠)와 거친 신경전을 이어왔다.
MBK는 메리츠가 2000억원 DIP 대출 중 1000억원만 승인하고 이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김병주 MBK 회장의 담보를 요구한 것에 반발하며 연일 공격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 23일 배포한 자료에선 "홈플러스가 청산하면 메리츠가 약 5000억원의 금융수익을 얻어 회생하는 것보다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메리츠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억지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업계에선 기존 기업회생 사례를 보더라도 최대주주의 이런 행보는 이례적이란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급전이 필요한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더 많은 돈을 빨리 빌려 달라고 독촉하는 꼴"이라고 했다.
지난 기업회생 과정에서 노조의 강경 일변도 대응, 정부와 여당의 무관심 등도 사태를 악화시킨 배경으로 꼽힌다. 민주노총 소속인 홈플 마트산업노조는 지난해 말까지 고용 보장을 주장하며 일체의 구조조정 추진안을 거부해왔다. 강성 노조 이미지는 M&A 시장에선 적정 인수금액보다 먼저 고려해야 하는 리스크 요인으로 꼽혀왔다. 당정의 회생 지원책도 효과적이지 못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최근 MBK와 메리츠의 의견 대립도 중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홈플러스가 매출 증대를 위해 민생회복지원금 사용처로 한시적으로 허용해달라는 요구안도 불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