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0만 데이터가 '무엇이 팔릴까' 답한다…유통가 AI 실험

하수민 기자
2026.07.28 16:00
AI가 상품을 기획하는 법/그래픽=김지영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함께 들어 있으면 좋겠어요. 가격은 1만원을 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실제 소비자의 답변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이 수백만건의 소비 데이터를 학습해 만든 합성소비자가 내놓은 의견이다. 유통업계가 AI에게 "무엇을 만들면 팔리겠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과거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무엇이 팔렸는지 확인하던 단계를 넘어 이제는 AI가 만든 가상 소비자를 통해 무엇이 팔릴지 예측한다. 상품 기획은 물론 마케팅과 물류까지 AI 활용 범위도 유통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멤버스는 최근 바이브컴퍼니, 제로투원파트너스와 AI 페르소나 기반 가상조사 및 분석 서비스 공동 개발에 나섰다. 핵심은 국내 최대 규모인 4500만명 엘포인트 회원 데이터다. 롯데멤버스는 가명 처리한 회원 데이터를 제공하고 바이브컴퍼니는 소셜미디어 기반 비정형 데이터를, 제로투원파트너스는 AI 페르소나 설계를 맡는다.

방대한 소비 데이터를 결합해 실제 소비자와 유사한 가상 고객을 구현하고 상품 유형 분류와 상품 추천, 마케팅 반응 시뮬레이션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과거 구매 이력을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미래 소비자의 선택까지 예측하겠다는 전략이다.

BGF리테일도 AI 합성소비자를 상품 기획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 AI 합성소비자 기술 스타트업 인텔리시아와 'AI 데이터 기반 리테일 혁신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합성소비자는 수백만건의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수천~수만명의 가상 소비자를 생성해 신상품과 가격, 프로모션 등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는 기술이다. 기존 수개월 걸리던 소비자 조사를 3~5일 안에 반복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대표 사례가 이달 선보인 9900원짜리 '러너박스'다. AI는 러닝 패키지 상품과 1만원 이하 가격, 단백질·필수아미노산 중심 구성을 선호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CU는 이를 반영해 에너지젤과 구운란, 닭가슴살 등을 담은 상품을 선보였다. 앞으로는 도시락 상품 개발과 디지털트윈 기반 매장 진열·동선 시뮬레이션 등 매장 운영에도 AI 활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AI 활용은 고객 접점과 물류로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CJ올리브영은 이달 외국인 고객이 많은 매장에 'AI 쇼핑 어시스턴트' 키오스크를 도입해 상품 추천과 재고 조회, 매장 위치 안내 등을 8개 언어로 제공하고 AI 통역 서비스 지원 언어도 38개로 확대했다. 신세계면세점은 LG전자의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접목한 AI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다. 주문부터 입고와 보관, 검수, 피킹, 출하까지 전 과정을 AI와 디지털트윈 기반으로 관리하고 이동형 로봇을 활용해 상품 분류와 이송을 자동화할 계획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유통업계는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해 이미 일어난 소비를 해석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AI를 활용해 앞으로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선택할지 예측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며 "상품 주기가 짧아질수록 AI를 활용한 상품 기획과 마케팅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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