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이 아니더라도 젊은 시절의 톰 크루즈가 나오는‘어 퓨 굿 맨(A Few Good man)’을 한두 번쯤은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개봉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3년이 흘렀으니, 여기저기 영화 채널에서 곧 망할 곰탕집처럼 재탕, 삼탕, 백탕을 끓였음을 감안하면 말이죠.
그런데 이상한 것이 보고 또 보아도 이 영화, 매번 느낌이 다릅니다. 얼마 전 주말 오후 소파에서 뒹굴며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영화는 쿠바 관타나모 미국 해병대 기지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룹니다. ‘문제 사병’하나가 같은 부대원 두 명에게 폭행당해 사망한 사건. 이 죽음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현장에 있었던 두 명의 병사들은 순순히 범행을 시인합니다. 명백하고 단순해 ‘보이는’ 사건이죠.
하지만 그 배후에는 두 병사들에게 해병대 내부의 비공식적 체벌인 이른바 ‘코드레드’를 지시한 지휘관이 있었습니다. 검사로 출연한 톰의 활약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압권은 이 장면입니다. 체벌 관행과 지시 사실을 줄곧 부인하던 지휘관이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큰 소리로 시인하던 그 장면 말이죠. “그래, 내가 그랬다. 내가!”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던 검사의 유도심문에 넘어간 꼴이긴 했지만 묘하게도 그 ‘기백’은 인상적입니다. 배우 잭 니콜슨의 힘이었을까요.
뭐가 어찌 됐든 ‘진실’은 드러났습니다.“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라고 오만하게 말하던 지휘관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집니다. 진실의 무게는 오롯이 그의 몫이 된 것이죠.
최근 해외자원외교 국정조사를 놓고 정치권 공방이 뜨겁습니다. 그 핵심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증인채택 여부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지난해말 재밌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구름 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 정말 구름 같은 분의 구름 같은 말입니다. ‘구름 같은’ 비전을 국민에게 들이대고 ‘구름 같이’ 외국을 들락날락 하더니 국민에게 남은 건‘구름 같이’ 사라진 혈세뿐이었으니 말이죠.
최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내가 증인 나가니 너도 나와라’는 식으로 건드리니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대놓고‘너와는 레벨이 다른 분이니 증인 안된다’고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레벨’높은 반박입니다.
MB정권의 자원외교와 관련해 감사원은 26조원을 투자했고, 앞으로도 34조원을 추가로 투자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은 회수가 불가능하고요. 일각에서는 74조, 100조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재임시절 자원외교 총책임자이었던 이 전 대통령은 직접 외국과 28건의 자원 양해각서를 체결한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검찰이 당시 자원외교 과정에서의 비리의혹까지 슬금슬금 수사중입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집니다. 그냥 증인으로 나와서 국민들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하는 건 어떨까.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그것이 역사를 생각하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억울한 것 있으면 해명하고, 잘못한 것 있으면 사과하면 될 일을.
‘최선을 다 했는데 그리 됐다’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속 시원히 후련하게 털어놓으면 본인을 비롯한 모두에게 행복한 일일 텐데 말이죠. 그 멋진 자서전에 만족하지 말고 국민들 앞에 오랜만에 나와 근황도 얘기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도록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 기백이 보고 싶습니다. 나라 체면도 국격도 그래야 올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잭 니콜슨은 아마 명함도 못 내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