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 894억달러(GDP 대비 6.3%)에 이어 올해는 GDP의 7%를 상회하는 1000억달러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수출증가율이 현저히 둔화되고 혹은 일본엔화 절하로 수출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등의 이유로 환율절하를 촉구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런 가운데 심지어 정부도 외환제도 운용을 바꿔서라도 원화절하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도록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원화절하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적극 억제해야 한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도 국제수지 흑자 유지 등으로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는 가급적 원화를 과거와 달리 약세가 아닌 강세로 가져가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국내외적으로 요인이 많이 있지만 이번에는 우선 국내 측면만 살펴보기로 한다.
현재 우리 경제에 가장 절실한 것은 과거와 달리 GDP성장률도 아니고 수출증가율도 아닌 고용증가율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식하게끔 되었다. 그런데 중국 제조업이 거대한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한 후 우리의 노동과 고용시장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제조업 또는 수출기업에 의한 고용의 성장은 한계에 봉착했고 앞으로도 개선될 조짐이 별로 안 보인다.
2014년 기준으로 보면 제조업 근로자는 10년 전과 다름없는 400만명 수준이지만 서비스부문은 지난 10년 동안 300만명의 신규고용을 창출했다. 현재 수출관련성이 높은 제조업의 취업인구에 비해 무려 5배 많은 2000만명 이상이 수출관련성이 낮은 이른바 내수산업에서 일한다. 고용증대를 위해서는 내수산업이 가일층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이제까지와 다른 정책방향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적어도 내수산업이 수출산업에 비해 역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과거 공산품과 농산품간 상대가격이 농산품에 불리하게 변화할 경우 농가소득이 쪼그라든 경험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상대가격의 변화는 소득과 자원의 실질적인 분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가령 원화가 절하되면 수출산업과 내수산업간 상대가격이 변화하고 결과적으로 내수산업의 소득과 고용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제조업의 생산성이 여타 내수산업 생산성의 2배를 훨씬 넘는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 비해 국내 대다수 내수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일을 형편없이 못 한다는 말인가? 필자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내막을 파헤쳐보면 생산성 격차의 상당부분은 그 동안 우리 정부가 수출기업 위주로 가급적이면 원화환율이 절하되는 쪽으로 환율을 운용해온 것과 매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가령 지난해 한국 PPP(구매력평가기준)환율은 달러당 838.52원으로 시장환율(1088.50원)의 77%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외환시장에서 형성된 환율이 실물경제상의 구매력평가와 괴리되어 구매력평가에 비해 23% 평가절하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수출산업은 자신이 받아야 할 소득에 비해 23%만큼의 추가 소득을 보조금으로 가져가게 된다. 반면 내수산업은 자신이 받아야 할 소득 중 오히려 23%만큼 원천징수를 당해 그만큼 자신의 소득을 빼앗긴 셈이 된다. 2000만명도 넘는 내수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봉급에서 ‘귀신도 모르게’ 원천징수해서 훨씬 소수 수출기업 쪽으로 소득이 이전되는 불공평을 정부당국은 계속 외면만 하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