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中企, 메르스보다 무서운 방미 취소

세종=유영호 기자
2015.06.12 07:00

"2000만 원 이상을 고스란히 손해 보게 생겼는데 어디다 하소연도 못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동행하기로 했던 중소기업 A사의 대표가 기자를 만나 털어놓은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박 대통령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대응을 위해 14일 출발 예정이던 방미 일정을 4일 앞두고 전격 연기했다. 순방 연기가 결정된 직후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는 예정됐던 경제사절단 행사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박 대통령의 이번 미국 순방에는 100곳 이상의 대·중소기업 및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동행할 계획이었다. 청와대는 회의 결과, 예정된 행사 진행 여부를 해당 기업 및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결론을 내놨다. 이른바 '알아서 하라'는 지침이었다.

하지만 A사는 미국 일정이 '타의'에 의해 취소됐다. 함께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던 대기업 및 기관이 순방이 취소가 아닌 연기된 만큼 행사도 연기하자는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의 의견수렴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A사는 대표를 포함해 총 6명이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이에 맞춰 비행기표와 호텔, 렌트카 등을 미리 예약해뒀다. 대통령 순방에 맞춰 예약자가 급증하면서 모두 평소보다 웃돈을 줬지만 그대로 예약에 성공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 방문 일정이 취소되면서 이 돈은 고스란히 위약금으로 날릴 처지다. A사 대표는 "말 그대로 생돈을 날리게 생겼다"며 "차라리 직원들 보너스라도 줄 것을..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이는 A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수의 중소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위약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B공공기관 관계자는 "메르스가 문제가 아니라 위약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그게 더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박 대통령의 일정과 별개로 예정대로 미국을 방문하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중심으로 경제사절단의 약속된 일정을 최대한 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소기업들은 "눈치 볼 일이 늘었다"고 불만이 높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중소기업계의 기대는 몹시 컸다. 대선 직후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은 박 대통령은 '중소기업 대통령'을 천명하고 경제사절단에도 중소기업을 대거 포함시켰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중소기업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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