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을 맞아 많은 매체가 쏟아낸 사설과 석학들이 진단한 칼럼제목을 검색해 보았다. 그 많은 내용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우리 학문체계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광복 70년을 맞이했지만 분단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직도 광복이 미완성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가 자부해도 좋을 것은 역시 남한만이라도 그 숱한 역경을 헤치면서 세계 10위권 경제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냉철히 볼 때 현재와 같은 위상을 누려본 적이 없다. 현재를 바탕으로 더 나은 발전을 이룩하자면 정말 100년 뒤를 내다보고 우리 나름의 학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첫째, 한 나라의 학문체계는(이공계를 제외한) 기본적으로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역사 철학적으로 중국의 유가, 근대화 초기 식민지체제, 그리고 광복 이후 미국체제가 혼재한 정체불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뚜렷한 목적함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이념의 대립과 세대·지역·계층 간의 이익 다툼에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다. 동북공정을 비판하고 식민지 시대를 극복하자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이를 승화할지에 대해서는 차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 한다.
둘째, 학문이란 궁극적으로 토착화해야 한다. 학문은 결국 자신이 처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뇌와 극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장 파악에 충실해야 하고 토착화해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논리성, 과학성, 현실성 있는 이론이 마련되어야 한다. 광복 70년이 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세계적 경제국가군에 합류하게 되었는지를 포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방면에 걸쳐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한때 많은 학자가 세계화를 주창했다. 지구촌의 화두가 세계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서구의 뒷모습만 좇아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작 알아야 할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은 소홀히 했다.
셋째, 매우 다행스럽게도 세계 수준에 도달한 유자격 학자군이 상당히 두껍게 형성되었다. 많은 인재가 유학을 다녀왔고 국제학계에서 인정받는 인사들도 배출되었다. 선진국에서 배워야 할 방법론도 충분히 배웠다. 각 학문 분야가 다루어야 할 주제도 우리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도 초·중·고과정은 물론이고 대학과정에서도 한국적 학문체계에 기초한 변변한 교과서 하나 없다. 오히려 원서교육을 강화한답시고 외국어교재(99.9% 영어)에 의존한다.
또한 외국 학술지에 게재해야만 높은 학문적 성과로 인정받고 중심을 잡아야 할 교육부도 이를 권장하고만 있다. 외국의 학문동향을 살피고 외국 학술지 게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학문체계 정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면 학문 방향이 사뭇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 점에서 어쩌면 우리 학자군이 시대적 잘못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자적 학문체계가 형성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이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철저히 실용주의로 나가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참석을 둘러싼 논란도 역사적 인식과 철학이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에 있고 그 수단으로서 인근 국가와의 우호증진과 경제교류 확대에 있다면 조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중국인 친구와 역사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지금의 중국은 ‘독립적 국격’에 크게 신경을 쓰는 눈치다. 그들 나름의 학문체계를 세우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