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서 문을 밀고 들어갈 때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다음 정도다.
① 앞만 보고 적당히 밀어 지나간다.
②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잠시 기다린다.
③ 그냥 문을 활짝 연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해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일은 자기가 하는 것이고 낯선 이의 호의에 뒷사람이 불편해 할 수도 있으니 ①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상대를 배려해 ②처럼 행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지기' 꼴은 되기 싫고 만약의 사고도 걱정되니 ③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요즘 '배려'를 주제로 한 기사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한 기사는 포털 사이트에서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을 만큼 관심을 모았다. 여기서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댓글은 이런 내용이다.
"저는 문을 잡아주는 편인데 뒤에 오는 사람이 감사 표시를 하거나 문을 잡아주면 좋겠어요. 주머니에 손 넣고 쓱 지나가 버리니 기분이…."
내가 인사를 건넸는데 상대가 쌩하고 가버리면 불쾌하듯이 문지기가 돼버린 이런 상황에 기분 상한 사람도 많은가 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3년 말 발표한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약 5년마다 조사)에 따르면 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가치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10점 만점에 8.7점으로 1위에 뽑혔다. 특히 청소년에게 가장 부족한 덕목을 묻자 55.4%가 '배려'를 꼽기도 했다.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3년 통신사 KTF가 배려심을 소재로 한 광고를 이어간 적이 있다. 그 중 '백화점 문' 편은 이런 내용이다. 양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여자가 문을 밀고 가려다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오는 남자를 보고는 팔로 문을 잡는다. 남자는 또 뒷사람을 위해 발로 문을 잡는다. 그리고 또 뒷사람이…. 당시 이 광고는 꽤 화제가 됐다. 요즘 배려에 대한 기사가 느는 것을 보면 그 때의 우리사회 갈증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상황은 한동안 뜨거웠던 '갑질 논란'과도 맞닿아 보인다. 문을 잡아주는 이는 '을'이 되고 몸만 빠져나가는 사람은 '갑'이 되는. 그래서인지 모두가 평등(?)해지는 "자동문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대 시절 해외에서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으로 간 적이 있다. 맨 앞에 앉았는데 불안한 마음에 몇 정거장 지나 뒷좌석 사람에게 "○○ 정류장 많이 남았나요?" 물었다. 그 사람은 잘 모르겠다며 그 뒷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질문은 계속 뒷사람에게 이어졌고 버스 안 모든 승객을 돌았다. 결국 그 정류장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들의 호의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 지금도 관광객이 길을 물으면 그 기억이 떠올라 최대한 잘 가르쳐 주려고 한다.
'각자도생(각자 살 방법을 꾀함)'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밥벌이와 미래 준비만으로도 충분히 팍팍한 삶, 일상의 작은 부분까지 이 말을 떠올리게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