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10년간 어떻게든 잘 살아남으십쇼. 아프면 안 됩니다."
최근 한 예방의학 전문가가 의대증원책을 놓고 한 말이다. 정부가 '의사 수 부족'에 대한 대책으로 의대증원책을 또다시 내놨지만, 전문의가 배출되기까지는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점을 염두에 둔 의미다.
이재명 정부는 의사 수 공백을 메꾸는 대안으로 의대증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윤석열 정부 때와 같은 카드를 내밀긴 했지만, 증원 규모가 다르다. 전 정부에선 매년 2000명씩 5년간 의대생 1만명을 늘리겠다고 한 데 반해, 현 정부는 2027년부터 5년간 연평균 의대생 668명을 늘리겠다고 결정했다.
의대증원의 실효성을 두고 정부와 의사집단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늘린 만큼 지방 근무 의사가 늘게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사들은 "미어터지는 의대 교실에서 양질의 의사가 배출될 수 없다", "의료과실을 범죄로 전제하고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현행 접근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 현상을 심화할 것"이라며 맞선다.
의대증원을 놓고 의정갈등 '시즌 2'가 이어지는 동안 당장의 국민 건강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게 생겼다. 최근 호흡 곤란을 겪던 10세 아동은 병원 12곳으로부터 수용 거부를 당한 끝에 끝내 사망했다. 매번 반복되는 비극에 여론은 들끓지만, 응급실과 배후진료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점,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다 잘못될 경우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점 등으로 병원은 환자 수용을 거부하고, 응급실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길 위에서 생명을 잃는 사고가 반복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4년 응급실 재이송 건수는 5657건으로 전년 대비 33.8%나 급증했다. 연간 중증 응급환자 수가 30만~34만명에 이르는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을 진료할 필수의료 전문의·전공의가 빠르게 고갈될 위기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26개 전문과 중 이른바 '필수과'(소아청소년과·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소속 전공의는 2014년 2543명에서 2023년 1933명으로 24%(610명) 감소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같은 기간 804명에서 304명으로 62.2%(536명)나 줄었다.
필수의료를 지키던 젊은 전문의마저 개원 등 목적으로 이탈하면서 고령화가 심해졌다. 흉부외과 활동 전문의는 70대 이상이 2013년 8명에서 2022년 54명으로 575% 늘었다. 반면 30대 이하 젊은 흉부외과 활동 전문의는 같은 기간 219명에서 148명으로 31.5% 줄었고, 40대도 25.6%나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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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10년 후 의사 수는 많아지더라도 '실력 있는 의사'를 만나는 게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의대 교실에서 카데바(해부용 시신) 1구당 학생 4명이 실습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집단 휴학한 24학번이 돌아온 25학번 교실에선 많게는 20명이 카데바 1구로 공부한다. 정부는 장기 프로젝트(의대증원)에만 총력을 기울일 게 아니라, 필수의료를 당장 되살릴 실질적 대책을 내놓는데도 속도를 내야 한다. 오늘, 길 위의 환자는 10년을 기다릴 수 없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