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전쟁]

4년 또는 1460일. 갓난아이가 제법 또박또박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어린이가 되는 시기다. 대학 신입생이면 어엿한 사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세계의 축제 지도가 한 바퀴를 돌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바뀌기도 하는 시간. 이처럼 누군가에겐 성장과 변화의 시간인 4년이 누군가에겐 깨지 않는 긴 악몽이 됐다.
2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을 시작한 지 정확히 4년이 된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잠든 새벽이건 출근길이건 시시때때로 공습경보가 울린다. 주민들은 익숙한 듯 방공호로 대피한다. 어제 만난 이웃은 폭격에 사망했다. 아빠와 남편, 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입대하거나 강제 징집돼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겪는다. 남은 이들은 가슴을 졸이며 사랑하는 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뿐이다.
지난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분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 전사자는 10만~14만명으로 추산된다. 부상자 등을 합친 사상자 규모는 50만~60만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유니세프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사망자만 3200명이 넘는다고 집계했다. 러시아는 더하다. 전사자는 약 27만5000~32만5000명이며, 전체 사상자 규모는 1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선은 교착 상태다. 러시아가 지난 4년 중 후반부 2년간 추가로 확보한 영토는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1.5% 수준이다. 하루 전진 거리가 수십 미터에 불과한 지독한 소모전이다. 움직이지 않는 전선이 산 사람들을 삼키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종전 협상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여전히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협상에 대한 우려도 크다. 미국은 오는 6월을 시한으로 종전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의 고위 안보 관계자들은 전쟁이 앞으로도 1~3년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협상과 가자지구 재건 문제로 관심을 돌리면서 우크라이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단 얘기도 나온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폭격과 사망 소식은 지구촌 어딘가의 일상적인 뉴스로 희석됐다. "이제 세계는 이 전쟁을 한 편의 영화처럼 지켜보는 듯하다. 관심이 떨어진 관객들은 빠른 결말을 요구한다. 결말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한 우크라이나 저널리스트는 전쟁 피로감을 운운하는 세계를 향해 일침을 놓는다.
우크라이나에서 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예브헨 빌루소프는 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냐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언제 끝나느냐 보단 어떻게 끝나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종전은 전쟁이 올해 끝날지 내년에 끝날지를 따지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전쟁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미래가 걸린 문제다. 그 미래는 이 전쟁으로 재편되는 세계질서 속에 살아가야 할 우리도 결코 무관치 않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