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We believe security shouldn’t come at the expense of individual privacy."
미국 IT 기업 애플이 자사 홈페이지 '개인정보' 코너 중 '정부기관의 정보요청'이라는 항목에 올려놓은 헤드라인이다.
지난해 12월2일 캘리포니아 주 동부 샌버너디노에서 14명이 살해된 총기테러 사건의 범인인 사예드 파룩과 타시핀 말리크 부부의 아이폰 잠금장치를 해제하라는 법원 명령에 대한 애플의 입장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로스앤젤레스(LA) 연방지방법원 셰리 핌 판사는 사예드 파룩의 아이폰5c에 담긴 암호화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애플이 수사 당국에 합리적인 기술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헤드라인과 같이 애플은 이를 거부했고, 미국 내부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 논란에서 핵심은 두 개의 선(善)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가치가 더 우선 하느냐 하는 것이다.
애플은 이 문제를 'Security(국가안보)' vs 'Privacy(사생활)' 문제로 이슈화하고 있다.
'국가안보 vs 개인의 사생활 보호' 프레임에서의 여론전은 애플에게 상당히 유리해 보인다. 신뢰할 수 없는 정권에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놓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통상 '국가안보'라는 용어를 접할 때 느끼는 감정은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안전보다는 정권의 안정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과거 국가안보를 빌미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왔던 많은 정권과 권력자들의 데자뷔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애플 잠금장치 해제 이슈를 더 정확히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국가안보에 앞서 'Life(국민생명)' vs 'Privacy(사생활)' 문제다.
국가의 뿌리인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프레임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안보는 국민 개개인의 생명을 지켜주는 행위를 말한다.
샌버너디노에서의 총격은 시민 개개인의 생명을 앗아간 테러다. 그 테러 주범의 휴대폰을 조사하려는 수사기관의 행위를 '사생활 침해'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애플이 얘기하는 '국가안보 vs 개인 사생활 보호' 프레임이 아닌, '국민생명 vs 사생활 보호'의 틀에서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애플의 개인정보 헤드라인을 조금 과장되게 수정해 보면 이렇다.
"우리는 국가안보(국민 생명 보호의 목적)를 위해서도 (테러범) 개인의 사생활일지라도 희생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문구를 바꿔놓고 보면 누구도 이런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의 자유는 침해될 수 없지만, 더 큰 자유를 위해서는 제한할 수 있다는 게 법의 정신이자 정의론자들의 일반적 견해다. 사생활 보호보다 생명의 보호가 더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애플과 많은 IT 전문가들은 잠금해제를 푸는 '뒷문(백도어)'을 한번 열어주면 '빅브라더'가 모두를 통제하는 세상이 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부당한 범죄 예방 프로그램을 상상하는 듯하다.
예언자들에 의해 살인 예고 경보가 울리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예비범죄자를 검거하듯 '국가권력'이 애플이 제공한 '뒷문'으로 상시 감시해 '개인 사생활'이 침해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이번 미 법원의 명령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현실화가 아니다. 이미 14명을 살해한 테러범에 대해 제한적으로 '생명의 보호'가 '사생활의 침해'에 앞선다는 조치다.
일각에선 이번 사안을 놓고 애플이 자사의 개인정보보호 정책을 '상술'로 활용한다는 의혹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자사 제품을 팔기 위해 개인정보보호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액션이라는 주장도 있다.
만약 이번 잠금해제 조치가 애플의 보안체계를 무너트리는 것이라면, 그 이후의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이 IT 기업 애플이 가져야 할 자세다. 세상에 열리지 않는 자물쇠는 없다. 애플이 테러범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하더라도 언젠가는 이를 뚫을 수 있는 열쇠는 나온다.
그동안 테러범이나 범법자들은 아이폰을 '안전한 범죄의 도구'로 거리낌 없이 활용할 것이고, 그 과정에 이 도구를 활용한 테러 희생에 대해 애플이 면죄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