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나 장기 따위를 둘 때 구경하던 사람이 끼어들어 수를 가르쳐주는 것을 훈수라고 한다.
훈수를 두는 사람은 제 3자여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당사자가 아니어서 절박함은 덜하고, 상당 부분의 생각은 지엽적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상황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모른다.
경기가 위축되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기업에 대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는 언론이나 학자들의 훈수들이 많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출간한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라는 책도 그 중 하나다. 일단 자극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이 책은 노키아의 흥망성쇠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인 듯하면서도,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삼성 해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경제력 집중 완화와 금산분리 정책으로 한국이 안고 있는 삼성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문제분석과 해법이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고 어색하다.
경제력 집중을 비교하면서 삼성의 매출액이 GDP 대비 20.4%라고 했다가 그 다음 페이지에선 '삼성이 차지하는 GDP 비중이 4.7%'(2013년 기준)라고 한다. 전자와 후자의 체감도는 크게 다르다.
전자인 'GDP와 기업매출'은 개념 자체가 달라 비교 대상이 아닌데도 경제력 집중이 과도하다는 것을 과장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매출액 대비 GDP 비교나, 삼성이 노키아와 달리 스톡옵션 제도가 없었다는 잘못된 작은 훈수들은 작은 실수로 넘어갈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2013년 단행한 이스라엘의 재벌 개혁안을 해법으로 제시할 때는 무리수가 보인다.
이스라엘의 당시 개혁안은 '대기업은 자회사 외에 손자회사는 둘 수 없도록 하고, 대기업의 은행 지분소유는 1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국내는 이미 9% 제한)' 등으로, 이를 국내에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한국과 이스라엘 대기업의 현실적 차이는 책에서 뺐다. 또 우리 법이 이미 그보다 더 강한 규제를 하는 부분도 책에는 거론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재벌 1위인 IDB와 2위 FIBI는 매출의 90% 이상을 자국에서 올리는 내수 기업이다. 이 기업들이 생필품에 높은 가격을 책정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고, 그 폐해가 2011년 시민들의 시위와 재벌개혁 정책으로 이어졌다. 내수기업이 자국 내에서 독점적 지위로 과도한 폭리를 취할 때 이런 경제력 집중은 견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국내 제조업체들은 이스라엘 기업들과 달리 매출의 80~90%를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그것도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인 애플이나 도요타와 싸우고 있다.
경쟁이 닫힌 이스라엘 내수시장과 열린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제력 집중 규제는 해법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수출 중심의 우리 기업들에게는 해외에서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도록 묶인 손발을 풀어주는 게 답이다.
저자는 또 삼성전자 실적 악화에 따른 주가 하락의 위험성으로 삼성생명이나 삼성물산 주가하락 등 연쇄반응을 경고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얘기한다. 주가가 많이 떨어지면 연쇄적으로 위험하다는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 1위 기업 IDB는 이런 지배구조개선 작업 이전인데도 2012년 개혁조치 발표 후 1년 만에 주가가 90%가량 폭락했다. 이 훈수를 따르면 주가하락의 연쇄반응을 막겠다는 조치가 위기를 더 빨리 부르는 '악수'라는 얘기다. 이 책에는 노키아도 미국적 선진 기업지배구조로 갔는데 결국 망했다는 얘기도 숨어 있다.
지주회사든 순환출자든 기업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다만 현 지배구조 하에서 삼성전자가 단군 이래 최고의 실적을 올린 대한민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훈수를 두되 제대로 둬야 '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