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기업마다 뭘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다. 전통의 서구 강대국들도 모자라 이제는 중국까지 신흥 고래로 등장해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낀 새우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면 새우는 어떤 전략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기업인으로서 이 중차대한 문제의 답을 어쩌면 지난주 겪은 사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충격적인 테러가 일어난 벨기에 거래처에 위로의 글을 보냈는데 답장의 마지막 줄에는 놀랍게도 ‘우리는 자유롭고 열린 삶을 살아야 하며 분노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못한 글이 적혀 있었다.
벨기에는 힘센 나라들 사이에 낀 나라로 지정학적 위치, 빈약한 부존자원, 높은 인구밀도,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 등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매우 많다. 나는 규모가 큰 산업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서 변변한 산업도 없는 이 나라의 잘 사는 모습이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만남이 잦아지면서 우리는 갖고 있지 않은데 이들은 갖고 있는 제3의 자본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사회적 자본’이다.
처음에는 성질 급하고 일중독인 한국 사람의 관점에서 많이 놀면서 꾸물거리는 벨기에 사람들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만남이 잦아지면서 협상의 과정에서 ‘을’을 배려하고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중재자의 모습, 본인들이 속한 공동체 조직원들을 소중한 동업자로서 믿고 배려해야 한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공동체의식 등에서 사회적 자본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불어·독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다문화국가다. 이러한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적 기반이 국민들의 융통성과 관대함을 증진해왔다. 이들은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독일 사람과 얘기할 때는 독어를 쓰고, 프랑스 사람과 얘기때는 불어를 쓰지만 공식 회의록을 기록할 때는 투명성을 위해 영어를 쓴다. 협상의 과정에서 충분한 의사소통과 교감을 나누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협상한 결과가 비록 우리 회사에 다소 불리하더라도 크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 그들과 일하면서 느낀 묘한 매력이다. 이러한 매력은 유럽연합 본부를 유치하고 벨기에의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약 70%를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채우면서 사회적 자산이 생존전략이 될 수 있음을 이미 증명해 보였다.
요즈음 한국 사회처럼 가진 자의 이기심과 계층간 갈등이 첨예화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용적인 입장에서 사회적 자산의 증진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한국 제조업체 경영자에게 우수한 우리 엔지니어의 존재는 크나큰 축복이다. 그들은 우수한 전공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열의가 넘치고 근면해 선진국 엔지니어의 3배 효율을 낸다. 한국 경영자들은 본인들의 경제적 성공을 위해 그들을 믿고 아껴야 한다. 세습 재벌 입장에서도 2세, 3세에게 재산과 함께 좋은 사회적 자산을 물려줘 미래에 그들이 겪을 잠재적 위험요소를 줄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대부분 좋은 기업경영자는 기업활동으로 돈을 많이 벌기보다 회사 임직원에게 좋은 직장을 마련해주는 것에 훨씬 큰 보람을 느낀다. 기업이 설령 큰돈을 벌더라도 법인세·종합소득세·상속증여세 등을 모두 합하면 회사 영업이익의 약 70%는 세금으로 징수된다. 근로자는 기업가가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서 내가 사는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야 정신적으로 행복할 수 있으며 근로의 보람도 느낄 것이다.
낯선 어려움을 겪는 대한민국에 이러한 실용적 필요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자본 확충은 제도의 실효적 개선이나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매우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며 고래싸움에 낀 새우의 새로운 생존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