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는 말이 있다. 더 좋은 해결방안이 있지만 상대방을 믿지 못해 결국 손해나는 결정을 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상대국을 믿지 못해 감산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출혈경쟁으로 치달아 배럴당 100달러 대의 유가가 30달러 대로 곤두박질친 것도 이러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건설분야의 입찰에서도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정부 입찰의 근간은 1960년대 제정된 재정법에서 출발해 현 국가계약법에 이르기까지 최저가낙찰제였다. 석유파동 등 국제경기의 부침에 따라 일시적으로 다른 제도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예산 절감을 위해 2001년부터 다시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해 그 범위를 1000억원 이상 대형공사에서 500억원, 300억원 이상으로 점차 확대해왔다.
'최저가 낙찰제'하에서 기업들은 공사를 따기 위해 출혈경쟁을 한다. 단기적으로는 공사를 수주할 수 있어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적정 공사비 확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최저가 낙찰제는 건설업계의 경영악화를 초래하는 주범이라는 오명을 갖게 됐다.
덤핑 수주의 문제는 단순히 경영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발주자에게 잦은 설계변경을 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안전과 품질관리는 뒷전이다. 심지어 저가 하도급과 임금 체불, 대금 지급 지연 등의 사회 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설입찰의 '게임 룰'을 바꿔야 한다. 조달청이 올해부터 시설공사에 있어서 최저가낙찰제 대신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를 시행하는 이유다.
유럽에서도 지난 2014년 최저가 입찰 제도를 폐지하고 우리의 종심제와 맥을 같이 하는 제도를 도입한바 있다.
소위 '경제적으로 가장 유리한 입찰자 선정제(MEAT)'로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능력, 생애비용 등을 종합평가하는 제도다. 종심제 도입으로 가장 크게 바뀌는 것은 가격 심사 방법이다.
종심제에서는 시장의 균형가격에 가까운 합리적 가격을 제시하는 입찰자에게만 낙찰된다. 가격만 보는 것도 아니다. 기술능력은 물론이고 공정한 하도급 거래, 임금 지급, 안전관리 능력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함께 평가해 낙찰자를 결정하게 된다.
이런 흐름은 공급자 간의 비합리적 경쟁구도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발주자와 공급자간의 합리적 협력 관계로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공공 입찰의 '게임 룰'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종심제의 시행에 따라 지난 15년간 대형공사 입찰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최저가낙찰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조달청 제1호 종심제 공사인 '제2 안민터널' 공사의 낙찰자 선정을 앞두고 있다.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기술력 등 전문적인 심사를 통해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근 종합 심사를 담당할 전문위원들을 선정하고 워크숍도 가졌다.
절차의 투명성을 위해서 위원 명단을 공개하고 심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건설산업 분야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차지한다.
약 175만 여명의 건설 근로자가 종사하는 국가 중추 산업이다. 그러나 건설산업의 수익성과 부채비율 등은 타 산업에 비해 부진하며 현재 상당수 건설사들이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심제가 최저가낙찰제의 가장 큰 폐단인 저가수주에 따른 부실시공과 경영악화를 해소하고 건설산업 발전과 경제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