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이같은 상황(고유가)이 지속되면 전기차 구매 등으로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바뀌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되돌리기 어려울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에너지계의 다보스포럼이라 불리는 미국 연례 에너지 콘퍼런스 세라위크(CERAWeek)에서 S&P글로벌에너지의 카림 파와즈 글로벌 정유시장 담당 이사가 남긴 이 말은 최근 중동사태 이후 나타나는 변화의 핵심을 짚어내고 있다. 유가 상승이라는 충격이 소비자의 선택을 변화시키고, 이는 다시 시장과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 대목에서 시장의 동력과 안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봐야 한다. 고유가는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소비를 유도한다. 내연기관차 유지 비용이 높아질수록 전기차는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에너지 절약과 같은 소비 패턴 변화도 뒤따르게 된다. 시장이 화석연료에 '덜 의존적인 구조'로 이동할 유인이 생긴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도 탈화석연료를 축으로 한 에너지안보와 맞물려 상승작용을 만들 수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화는 오랫동안 기후 대응 수단으로 논의돼 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확산된 인식은 분명했다. 재생에너지가 기후·환경 정책을 넘어 에너지안보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번 중동사태는 이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역사상 최악의 석유 위기"라고 평가할 정도의 공급 충격이 발생했지만 모든 국가가 같은 수준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높은 재생에너지 비중과 낮은 가스 의존도를 바탕으로 전력가격 변동성을 상대적으로 억제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몇 년간 급증한 옥상 태양광이 화석연료 수입을 줄이며 충격을 흡수했다. 연료비가 없고 국제 정세의 영향을 덜 받는 특성을 지닌 재생에너지가 기후를 위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화석연료 가격과 공급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로 작동한 사례들이다.
반대로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같은 충격에 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가 상승은 전력요금과 물가를 자극하고, 금리와 환율, 산업 경쟁력까지 연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 기조에서 예외일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1차 에너지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외부 파고에 취약하다. 단기적인 가격 안정을 넘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에너지전환이 어느 곳보다 시급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를 위한 에너지안보·에너지전환에 대한 공론화는 더딘게 사실이다.
에너지안보의 경우 더 이상 '어떻게 들여올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덜 흔들리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안보와 시장이라는 두 축이 같은 방향, 즉 탈화석연료를 향해 수렴하는 분위기도 짙어지고 있다. 외부 충격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관련 논의에 대한 진전이 없다면 이는 결국 비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더 큰 희생을 치르기 전에 단기적인 처방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에너지전환이 곧 안보이자 산업경쟁력 기반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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