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구의역 사고는 건실한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로 시작했다. 사고의 원인이 해당 업체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시작되었다. 해당 업체는 서울메트로에서 해고된 직원들의 정규직 신분연장을 위해 설치된 자회사였다. 그리고 이들의 안정된 고용과 임금의 지속성은 충원된 비정규직 직원들의 치명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은 이제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사고현장에서 예외 없이 노출되는 부러진 철골과 같은 것이다. 세월호 비극에서도 물속에서 학생들을 부여안았던 기간제 교사의 죽음은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은 질병의 관리에서조차 배제되어 있던 병원 비정규직의 문제가 원인이었다. 이처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그들의 삶을 어렵게 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뿐 아니라 심각한 차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유발하여 사회 전체의 안정에도 심각한 균열을 유발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사람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탐욕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질타하며 이들의 탐욕과 감독기관인 서울메트로와 서울시의 무능함에 비난의 화살은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비극은 소위 메피아(메트로+마피아)의 사악함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이들 대다수도 역시 구조조정으로 정리된 근로자들일 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최하층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구조조정이며 고용체계 전체에 퍼져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선명한 차별구조라고 할 수 있다.
갈라진 고용체계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고용체계는 근로자의 상당한 부분이 노동소득의 분배에 참여할 정당한 권리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한 결과로 등장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한국의 자본주의는 노동의 분배를 최소화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는 또한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현 노동조합의 체계에 의해서 뒷받침되었다.
경쟁력을 강화하는 다른 방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일과 같은 유럽국가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신분을 보장한다. 최근 이들 나라에서 고용규정이 유연화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동일임금 동일노동에 대한 강한 법적 규제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복지체계 지원이 균열과 갈등을 완화하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방식으로 노동관계를 유연화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고용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임금과 처우의 차이는 개별 근로자의 노동생산성 수준에 따라 주로 결정되기 때문에 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 착취는 주된 문제로 부상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 고용체계는 1990년 말 외환위기 이후 자본과 노동, 그리고 노동자간 세력관계에 바탕을 두고 정치적으로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도는 일단 구축되고 난 후에는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하고 규정하는 성격을 띤다. 구축된 고용체계가 노동자들과 자본가 사이의, 그리고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규정하는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우리나라 고용관계에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강력한 부분을 상대적으로 높은 보상으로 포섭하되 이에 필요한 비용은 노동자의 약한 부분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통해 취득한다. 이러한 제도적 상황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갈등에 불씨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구의역의 비극을 통해 불거진 사회갈등의 원인은 정규직 노동자 개인들의 사악함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는 개인적으로는 선량하고 양심적일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행동의 결과를 사악하게 규정하는 고용체계가 문제인 것이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미세먼지의 오염이 사회적 선택의 산물인 것처럼 우리나라의 갈라진 고용체계 역시도 지난 시기의 정치가, 자본가, 노동자들의 집합적 선택과 갈등의 산물이다. 따라서 도덕적 질타로 사악한 책임자를 색출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보다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두 사회구성원으로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고용체계와 복지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애석하게 목숨을 잃은 청년 노동자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갚아주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