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민심을 발화시킨 '최순실게이트'. 부산지역 유력 인사들이 떨고 있다는 '엘시티(LCT) 사업 비리 의혹'. '급'이 다른 이 두 사건은 헌정사 첫 '피의자 대통령'이 '엘시티 엄정 수사' 지시를 내리면서 미묘한 역학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야 유력 정치인 연루설이 나온 엘시티 사건으로 최순실게이트의 물타기를 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정관계 로비리스트는 없다'고 못 박은 엘시티 수사팀은 이영복 엘시티 회장의 골프접대 명단을 확보해 로비수사의 첫 단추를 꿰고 있는 상황이다.
친목계를 같이 했던 최순실과 이영복. 이 두 사람은 권력의 장막 뒤에서 각종 이권에 개입한 범죄혐의의 유사성 말고도 '반칙'으로 일관한 삶의 방식이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검찰의 공소장을 보면 '대통령과 공모'한 최순실은 대기업들에게 돈을 내라고 강요했고 민간기업인 KT 인사에 간여하는가 하면 광고대행사 포레카를 백주대낮에 강탈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딸 정유라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부정입학 시키고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개인적 치부를 했다는 또 다른 '반칙'들은 이후 검찰수사와 특검이 밝혀내 단죄해야 할 부분으로 남게 됐다.
사업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특혜성 인허가와 대출이 실행된 엘시티사업 역시 이 회장의 '반칙' 없이는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둘의 삶의 방식에서 달랐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이 회장은 자신의 호를 '만을'(萬乙)이라고 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을'이 돼 인맥을 쌓았다는 것인데 특별한 대가 없이 술을 사거나 골프비를 냈다는 것이다.
'갑중의 갑'으로 살았던 최순실과 '만년 을'을 자처했던 이 회장이 살아간 방식을 보면, '갑을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정당한 노력만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수많은 촛불들이 밝혀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헌정 파괴에 대한 분노뿐만 아니라 갈수록 힘겨워지는 민생 현실에 대한 분노도 반영됐을 것이다. 청년 실업과 가계 부채가 증가하고 양극화와 경제력 집중이 가속화하고 있는 현실이 민심 이반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난 19일 광화문광장의 4차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한 달에 150만원 벌고 있습니다. '돈도 실력이니 돈 없는 부모를 원망하라'는 얘기를 듣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어요."
그야말로 '한줌도 안되는' 갑을 향한 분노는 '대통령 퇴진'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열망하는 목소리와 함께 증폭돼 가고 있다.
갑과 을로 각각 살아오며 세상을 반칙으로 일관했던 최순실과 이영복. 비리의 장막이 걷어지고 있는 두 사건이 우리 사회의 '성공방정식'에도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을까? 촛불의 함성 속에 녹아있는 평범한 상식은 성공과 출세를 위해 지금도 반칙을 일삼고 있는 세상의 모든 갑과 을들이 새겨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