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과학화된 국민’을 몰라본 정권의 끝

신혜선 문화부장
2016.11.29 05:30

정보미디어과학부장과 문화부장을 겸임한 지난 2년 ‘갸웃’하면서도 “오호” 하는 탄성을 몇 번이고 내지른 기억이 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과학자가 쉽게 말하고 쉽게 글을 써서다. 과학적 근거를 들이미니 설득력 있고 재미있다. 과학자들의 강연에 가면 소재가 과학이지 인문학이 던지는 메시지와 전혀 다르지 않아 문화 측면에서 다룰 만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출판시장에서도 그 흐름은 그대로 나타났다.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이 늘고 독자 역시 느는 건 당연하다. 알라딘은 올해 과학책 판매량을 11월 현재 대략 36만5400여권으로 집계했다. 지난해엔 32만4600여권이었다. 4만여권 더 팔렸다. 시장점유율이 더 높은 교보문고나 예스24를 합치면 올해 과학책은 지난해 대비 못해도 10만부가량은 더 팔릴 것 같다.

과학자들은 수년 전부터 ‘대중의 과학화’를 이야기했다. ‘과학의 대중화’에 익숙한 터라 다소 생소했다. “과학의 대중화가 대중에게 과학을 쉽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었다면 이제는 국민 스스로 과학적 사고를 통해 합리적 의심을 하고 그 답을 직접 찾을 수 있도록, 과학적인 인간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과학자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의미까지 포함한다”는 설명 정도로 들은 기억이 있다.

실제 과학자들이 과학화된 대중과 더불어 이른바 합리적 의심의 주체로 움직이고 있다.

입에 올리기도 처참한 온갖 의약품을 청와대가 보따리로 구매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다. 청와대에서 비아그라·팔팔정(발기부전치료제)에 프로포폴·미다졸람 등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을 왜 샀는지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다. ‘청와대 직원들이 필요해서’라니. 과학자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를 통해 조목조목 비판한다. 현직 의사들은 익명이지만 그 약들이 주로 어떻게 쓰이는지 세세히 알려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법으로 금지된 줄기세포주사를 맞은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자는 보톡스주사 한 대를 맞는 게 100개 암세포를 주입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아주 위험한 일임을 설명한다. 돈 있는 자들이 젊어지고 싶어 받는 시술이 결국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스스로 마루타가 되는 행위임을 모른다는 사실, 결국 중독의 결과임을 개탄하고 꾸짖는다.(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관련업에 종사한다는 어떤 이는 ‘줄기세포와 면역세포를 보관하는 것은 불법은 아니나 시술한 것은 대부분 불법’이라며 블로그에 자세히 설명했다.

태반·감초·마늘주사 등을 독감 예방 접종용으로 구매했다고 해명하는 청와대를 향해서는 감기와 독감의 차이, 독감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시장에서 약장수들이 파는 약처럼 보이는 검증되지 않은 약을 주치의가 (대통령의 독감 예방에) 처방했을 리 없다”고 일갈한다.(이정모 생화학자)

5차까지 이어진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 참석자 규모 파악에도 과학자들이 나섰다. 통상 경찰에서도 사용하는 ‘면적 X 밀도’ 계산법을 적용하더라도 점유면적이나 밀도 모두 경찰이 쓰는 숫자보다 커 경찰 추산은 적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적지 않은 유동인구를 고려하면 숫자는 더 커진다.(김상욱 물리학자)유동인구를 고려해 추산하자, 별을 세는 방법으로 측정하자(원병묵·박인규 물리학자), 실제 사진을 활용해서 특정 구간(사진 크기) 안에 들어간 촛불 개수와 비율을 적용해 계산하자(‘캔들카운터’)는 등 다양한 방법이 제기됐다.(박인규)

권력을 위임해준 국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기는커녕 70년대식 사고, 70년대식 수법, 70년대식 정치로 나라를 통치하려 한 결과는 명확하다. 과학기술도 진화하고 국민도 진화했다. 더군다나 국민은 이 낯부끄러운 시간마저 인내할 각오를 하고 있으니 선택지는 오직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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