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대중이 흔히 듣는 경제학적 이론이자 심리학 용어인 ‘죄수의 딜레마’가 있다. 1950년 미국 국방부 소속 경제학자 메릴 플로드와 멜빈 드레셔의 연구에서 시작된 이 이론은 범죄 혐의가 있는 두 용의자에게 제안하는 일종의 ‘형량 감축 선택지’다.
제안은 모두 세 가지다. ①두 사람 모두 순순히 자백하면 징역 3년 ②두 사람 모두 묵비권을 행사하면 징역 3개월 ③한 사람이 자백하고 다른 사람이 부인하면 자백자는 석방, 부인자는 무기징역이다.
이 이론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우월한 모델은 ①번이다. ②번은 상대방의 ‘배신’을 걱정하기 때문에 섣불리 ‘모험’을 걸 수 없고 ③번은 상대방이 자백할 경우 자신도 3년의 징역형을 살아야 하고 상대방이 자백하지 않을 경우 그 상대방이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따라서 도덕적으로나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모델이 되는 선택지는 ①번이 되는 셈이다. 이를 ‘내시균형’(nash equilibrium)이라고 하고 가장 좋은 ‘차선책’으로 여긴다.
②번 선택이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우월전략이 되지 못하는 것은 서로 입을 맞출 강력한 믿음이 시간이 갈수록 사라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②번의 효과를 알면서도 실제로는 모두 범행을 자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게임의 특징이다.
대한민국을 국정농단 사태로 연일 어지럽힌 최순실이 1차 공판에서 “하나도 죄가 없다”고 강변했다. 처음 이 사태가 불거진 뒤 그가 검찰에 들어설 때 “죽을죄를 지었다”며 고개를 숙이던 반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시계를 돌려 태블릿PC 문건이 터져 박근혜 대통령이 첫 대국민사과를 할 때로 돌아가보자. 박 대통령의 권력이 언론의 보도로 금세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이 적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했다는 검찰의 발표가 나올 땐 ‘이제 모든 게 끝났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때 최순실은 ‘죄수의 딜레마’ ③번에 의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에서 언론 보도를 ‘인정’하면서 최순실은 자신의 부인이 더 이상 ‘효력없음’을 깨달았을 수 있다.
최순실은 검찰 기소를 앞둔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했나요?” “저는 무기징역인가요?”라고 변호인에게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막강한 권력을 지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자신이 무기징역이라는 연결은 ③번 딜레마의 결과로 수용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순실이 ‘죄수의 딜레마’ ③번에 ‘잠시’ 몸담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이론이 가진 두 가지 대전제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①번이나 ③번 같은 비교적 우월모델의 결과가 나오기 위해선 △두 용의자를 격리해 의사전달의 협조 차단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소멸로 인한 믿음의 부재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각종 의혹과 혐의 등으로 대통령이 난관에 봉착한 상황만을 인식(구체적 내용이나 앞으로 전개 상황 불예측)한 상태에서 최순실이 당시에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①번과 ③번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묘하게 돌아갔다. 박 대통령은 검찰의 발표에도, 그리고 3번의 대국민사과에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더 모질게 대항했고 각종 의혹도 전면 부인했다. 연인원 1000만개 ‘촛불’이 주는 의미는 고사하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모든 힘을 쏟았다.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었던 최순실은 이제 ②번 카드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그 사이 모든 게 바뀐 걸 최순실도 절감하고 있어서다. 어쩌면 세 카드 중 가장 형량이 가벼운 ②번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까지 높이고 있는 듯하다.
“죽을죄”에서 “죄가 없다”로 말이 바뀌기까지 그가 모색한 전략은 ‘가장 가벼운 형량’을 받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두 조건에서 첫 번째 조건인 ‘박 대통령과의 의사전달이 이뤄지지 않아도’ 탄핵과정과 법리논쟁의 흐름과 분위기 속에서 최순실은 묵비권(부인)을 행사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했을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인 믿음 역시 박 대통령이 여전히 자리에 있는 한, ‘입 맞추는 역할’에 충실할 시간도 (형식적) 권력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청와대의 권력이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의혹의 당사자와 증인, 연루자들이 “모른다”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입을 맞췄다. 모두 지금 상황에서 리스크가 가장 낮은 ②번에 ‘올인’한 셈이다. 끝까지 부인할 수밖에 없는 박 대통령과 함께 가는 길이 가장 가벼운 형량을 받는 열쇠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만이 박 대통령에게 모든 혐의를 씌우는 ③번을 선택했다. 자신은 자백하고 상대방은 부인하는 ③번에서 석방을 기대하는 측면이 컸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혐의를 부정하는 ②번 딜레마에 집중할수록 최순실도 같은 길을 걸을 게 뻔하다. 상대방이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40년 우정 속에서 다시 발아하고 있는 듯하다.
특검이 ①번과 ③번의 결론이 나오도록 영리한 해법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 ②번으로 대한민국이 분노와 우울증으로 신음하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