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 시평]즐기는 삶의 가치를 찾자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2017.05.10 04:52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든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또는 우리 선비들의 생활신조기도 한 안빈낙도, 즉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면서 살아가는 삶” 등 즐기는 삶에 대한 우리의 로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즐기며 산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또 다른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상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자체를 의미 있게 여겨 온전히 누리는 것이다.

오늘날 불행한 점은 이러한 로망과 달리 우리는 늘 과도한 경쟁과 평가의 고통 속에서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행위의 결과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 사람들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떼로 경쟁해서 이기려고 한다. 이것은 어떤 측면에선 인간이 지닌 꽤나 당연한 심리일 수 있다. 문제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거의 얽혀 있지 않은 상황, 가령 여가시간마저도 승패의 희비로 얼룩짐으로써 그 본래 의미가 크게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사례를 최근 축구경기장에서 발생한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 특정 축구팀의 팬들은 성적이 부진한 자신의 팀이 또다시 패배하자 그 분을 삭이지 못하고 감독과 선수들에게 막말을 하며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 펜들은 분명 고단한 노동의 시간을 벗어나 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기 위해 축구장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조차 경쟁의 고삐를 놓지 못해 얼굴을 붉히고 성질을 부림으로써 자신들의 바람과 달리 불행한 시간을 겪고 말았다.

 

왜 우리는 스포츠 관람과 같은 여가활동조차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성공과 실패 또는 승리와 패배라는 이분법적 공식에 너무나 익숙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이룬 것의 상당 부분이 이러한 공식 덕분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해방과 전쟁 이후 우리는 경쟁적 구도 속에서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 남들보다 더 잘 살고 더 성공하겠다는 삶의 목표가 우리를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끈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승패의 공식 역시 그 어두운 면이 없을 수 없다. 우리는 이기는 것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승패를 떠나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역풍을 맞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경쟁하는 마음은 심리적 긴장과 압박으로 가득 찬 상태로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말하자면 한편으로 우리는 일정 부분 경쟁과 승리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새로운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는 날이다. 이번 선거는 지난 정권의 비리와 불법을 극복하고 통합의 사회로 나아가는 첫출발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거는 본질적으로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에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은 반드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과한 욕심에 서로를 험담하고 폄훼하는 말이 난무하게 된다. 분열과 불화를 조장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후보자뿐 아니라 유권자들조차도 선거를 즐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록 선거에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즐기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후보자들이 내놓은 정책이나 선거 전략이 국민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는 식의 술책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로 연결해서 통합하는 대명제에 기반할 때 선거는 국민적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국민 모두를 위한 큰 정치를 펼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때 유권자에게 선거는 이겨야 할 투쟁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는 즐거운 잔치가 될 수 있다. 부디 모든 국민이 이번 대통령 선거는 결과를 떠나 즐길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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