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설렁탕 국수사리

김익태 사회부장
2017.07.26 09:29

1962~64년 대홍수와 태풍, 극심한 가뭄 등으로 사상 최악의 흉년이 들었다. 쌀과 보리 수확량이 급감한 탓에 식량 부족이 심각했다.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다. 식량 파동이 시작된 1962년 12월, 정부는 ‘혼·분식 장려 운동’을 펼쳤다. 잡곡을 많이 먹고 미국 원조를 받았던 밀가루를 확산시켜 쌀 소비를 줄여보겠다는 거였다.

가정에선 이틀에 한 번씩 밀가루 음식을 먹게 했고, 쌀 가게에선 쌀 80%에 잡곡 20% 이상을 섞어 팔게 했다. 음식점에선 잡곡 20% 이상, 탕반(湯飯)에는 30% 이상 국수를 넣게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라면이 이때 등장했다.

‘운동’은 1971년 11월 ‘행정명령’이 됐다. 위반하면 영업허가를 취소시켰다. 전통 음식점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좁쌀·보리·옥수수·콩 등 잡곡을 섞어 지은 밥을 받은 손님들은 불평했다. 매상이 줄었다. 일부 식당은 쌀밥을 지어 팔다, 어떤 한정식집은 단골손님을 내실로 불러 쌀밥을 팔다 적발됐다는 기사가 업체 실명과 함께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 결과 일부 음식이 ‘퓨전’ 형태로 변화했다. 원래 설렁탕에는 국수사리가 없었다. 이때부터 면 사리가 들어갔다. 규제는 박정희 정권 내내 이어졌다. 이런 강제적인 분식 장려책은 요즘처럼 국민 입맛이 밀가루 친화적으로 바뀌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7년여가 흐른 2008년 3월 뜬금없이 ‘설렁탕 국수사리’가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다. 갓 취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수사리로 밀 대신 쌀을 사용하자는 ‘창조적인’ 발상을 내놨다. 밀가루 등 수입 곡물 가격 폭등으로 물가가 뛰었기 때문이다. 연간 6000억 원에 달하는 쌀 재고 관리비도 절약하고, 쌀소비도 촉진하자는 취지였다.

농림식품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쌀라면·쌀국수 장려 운동이 시작됐다. 설렁탕 업체를 모집해 쌀 사리 넣기를 1개월 시범 운영했다. 정작 밀가루보다 쌀 가격이 비싸 차액까지 보조해줬지만, 곧 접었다. 바로 삶아 먹지 않으면 찰기가 떨어져 손님 입맛을 잡는 데 실패했다. 업체들이 손사래를 쳤다. 당시 시범 사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던지 농림부의 한 공무원은 지금도 설렁탕 사리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수익이 나면 업체들이 쌀라면을 경쟁적으로 만들었을 터. 설렁탕에 쌀 사리나 밀가루 사리를 넣을지는 음식점 주인과 소비자들이 선택할 문제였다. 사리 대신 밥 량을 늘린 곳도 있었다. ‘사리는 왜 안주냐’는 손님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분식 장려책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설렁탕 사리는 수십 년이 지나면서 하나의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고, 정부의 각종 쌀 소비 장려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당시 분식을 장려했던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질 지 상상이나 했을까.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며 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 시작됐다. 민간이 못하니 정부가 하겠다는 거다. 올해 중앙·지방정부 공무원 1만 75명이 추가 채용된다. 야당 반대로 채용규모가 1925명 줄었다. 올해 선발 비용으로 80억 원만 들어가지만, 매년 추가 비용이 눈덩이처럼 발생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당초 계획대로 1만2000명의 공무원을 추가 채용했다면 30년간 최소 8조3658억원에서 최대 23조365억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앞으로 5년 간 17조 원 가량을 투입해 투입해 공무원 17만여 명을 뽑겠다고 한다. 이들에게 줘야 할 봉급과 봉급과 연금 등 재정 압박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고용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채용은 곧 평생 고용을 의미한다. 결국 미래세대에 큰 부담이 될 게 자명하다. 사회복지 부문 인력을 늘려 대국민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일자리 ‘수’ 목표 달성에 방점이 찍혔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최근 정부가 여러 국정과제를 놓고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명분은 개혁이고 , 높은 지지도가 동력이다. 실기하면 안 된다는 초조함도 엿보인다. 여느 정권 초에 벌어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일면 수긍이 가지만,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하는 것도 적잖다. 모두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백년대계들이다. 충분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설렁탕 국수사리’를 곱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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