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자리에서 만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진솔했다.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하다 보면 의례적인 말과 태도가 몸에 붙어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조차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최 위원장은 달랐다. 시골 사람처럼 순박하고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그런 솔직함이 좋았다.
장점으로 보였던 최 위원장의 솔직함을 최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난 10월30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때였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래 전에 관료를 지낸 올드보이들이 금융협회장으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에게 직언도 불사하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그런 분들이 오실 우려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금융협회장은 협회 회원사들이 투표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뽑는 것으로 돼 있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금융당국은 물론 청와대까지 금융협회장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었다.
실제로 최 위원장의 국감 발언 이후 협회장을 뽑은 은행연합회와 생명보험협회는 그간 거론됐던 올드보이를 아예 배제하고 그간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순수 민간 출신을 수장으로 택했다. 은행연합회장 선출 이사회에 참석했던 한 은행장은 “올드보이는 안 된다고 해서 민간 출신 중에 젊은 사람을 뽑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최 위원장의 ‘솔직함’은 지난 11월29일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대책’ 발표 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서도 드러났다. 최 위원장은 “(금융지주 회장이) 경쟁자들을 인사 조치해 자기 혼자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게 사실이라면 CEO(최고경영자)로서 중대한 책무를 유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최근 금융권 인사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질문한데 대한 대답치고는 너무 구체적이고 길어 금융권에선 ‘작심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내 금융지주사 중 최근 회장이 연임한 곳이 한 곳, 조만간 연임 가능성이 있는 곳이 한 곳이다. 조만간 연임 가능성이 있는 곳은 ‘연임하지 말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특정 CEO의 진퇴를 언급한 것이란 해석은 앞서간 것”이라며 “앞으로도 금융회사 CEO 선출이 계속될 예정인데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금융권에 개선을 촉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금융위원장이 ‘솔직하게’ 입장을 밝힌 것이란 설명이지만 그 공개적인 ‘솔직함’이 금융권에선 ‘CEO 연임은 조심해서 하라’는 인사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졌다.
한 금융공공기관 고위 인사가 최 위원장 발언 이후 세계적인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FT) 기자의 취재 전화를 받았다. 요지는 “한국은 금융회사 CEO의 재직기간이 유독 짧은 이유가 뭔가. 한국에선 금융회사 CEO 연임에 왜 그리 부정적인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금융당국 수장의 ‘솔직한’ 공개 발언이 서구 기자의 눈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나 보다.
금융협회장은 물론 민간 금융회사에 대한 인사 ‘관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회장이 연임한 KB금융지주와 은행장을 새로 선임한 우리은행 사례에서 보듯 인사 ‘관치’는 문재인 정부 들어 크게 줄었다는 평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금융권 인사에 대한 최 위원장의 ‘솔직한’ 공개 발언은 더욱 배경이 주목된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들어 정부가 협회장이나 금융회사 CEO에 특정인을 찍어 막후에서 지시하는 ‘포지티브’ 인사 개입은 줄어든 대신 ‘이 사람은 안 된다’라고 공개 가이드라인을 주는 ‘네거티브’ 인사 개입이 새로 등장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권 인사와 관련한 갑론을박이 많아 나도 ‘솔직하게’ 공개 질문하고 싶다. “위원장님의 솔직함은 그냥 개인적인 소신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금융권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준비된 발언인가요?”
개인적인 생각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의 ‘솔직함’은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는 만큼 생각해봐야 할 듯싶다. 준비된 발언이라면 정부가 새로운 방식의 인사 ‘관치’를 한다는 의미일 텐데 과거 ‘은밀한 관치’보다 발전한 것인지 역시 생각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