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자국 비만약 회사로 성장률 껑충
신약이 국가경제 결정할 핵심자산 부상
한국도 바이오산업 펀드·생태계에 전력투구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3분기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는 전분기 대비 2.3% 성장했는데, 이는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덴마크 통계청은 이같은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제약산업을 꼽았다. 제약산업을 제외하면 덴마크 경제성장률은 0.7%에 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덴마크 제약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기업은 노보 노디스크다. 지난해 노보 노디스크 전체 매출(약 73조원)의 3분의2는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과 비만 치료제 '위고비'에서 나왔다. 이 두 약품은 이름과 용량, 그리고 허가받은 용도만 다를 뿐, 성분은 세마클루타이드로 똑같다. 하나의 '대박 신약'이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신약 개발은 '전쟁'이 됐다.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을 다룬 '신약의 전쟁'(윤태진 지음)은 신약을 한 국가의 경제적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자 '안보의 중추'로 정의한다.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글로벌 강대국들이 바이오 기술을 국가 전략 자원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신약 개발은 보이지 않는 영토 확장의 중심에 서게 됐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도 이 거대한 경쟁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도전장을 내민 K-바이오기업들에게 올해 하반기는 특히 중요하다. 우선 이달 중 코오롱티슈진이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TG-C'(옛 인보사) 미국 임상 3상 주요지표(톱라인)를 공개할 예정이다. 성공한다면 빅파마마저 실패한 무릎 골관절염 임상 3상의 최초 성공 사례가 된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AR1001'를 개발 중인 아리바이오는 이르면 오는 9월 글로벌 임상 3상 톱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AR1001의 임상 3상이 성공하면 전 세계 최초 경구용(먹는)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신약 개발 과정은 험난하다. 우선 성공 확률이 극히 낮다. 초기 후보물질 가운데 최종 허가를 받는 신약이 될 확률은 0.02%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발생할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실제로 코오롱의 TG-C는 국내 품목허가 취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아리바이오는 3상 임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글로벌 판매권을 해외 기업에 팔았다.
제약·바이오산업엔 '이룸의 법칙'(Eroom's Law)이란 고질적 난제가 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거꾸로 읽은 것인데, 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신약 개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연구개발(R&D) 생산성은 오히려 떨어지는 역설을 뜻한다.이런 이유로 글로벌 빅파마들은 모든 신약을 직접 개발하는 방식 대신, 실제 환자 데이터를 통해 효능이 입증된 파이프라인을 외부에서 사들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최근 대형 라이선스 계약은 임상 2상 PoC(개념입증) 확보 이후 이루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상당수 국내 중소 바이오 기업들은 여기까지 갈 돈이 없다. 독자개발도, 매각도 어려울 경우 지금껏 개발해 온 기술이 묻혀버릴 수 있다.
기술이 사장된다면 이는 개별 기업의 실패일 뿐 아니라 국가 자산의 손실이다. 최근 정부가 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K-바이오·백신 펀드와 임상 3상 투자펀드 조성에 나섰는데, 제대로 산업을 키우기 위해선 임상 1상과 PoC 단계 기업까지 자금이 신속하게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신약 개발의 성패는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가능성 있는 기술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국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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