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땅에서 화합의 바다로…해역인문학을 제창하며

손동주 부경대 교수(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 사업단장)
2018.08.24 04:00

[기고]손동주 부경대학교 교수(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 사업단장)

65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한 주다. 그리고 이 모습은 숨 가쁘게 변하고 있는 동북아정세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해빙무드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지역의 국가, 사회, 개인 일상 곳곳에서는 갈등과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인식문제,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문제, 성별 및 세대 간 갈등문제, 민족혐오문제 등이 바로 이러한 갈등과 모순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갈등과 모순을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험과 가치의 공유를 통해 타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려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즉, 동북아지역 각 층위에서는 갈등의 심화와 연대의 모색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바로 여기 인문학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존재한다.

오늘날 인문학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 중 하나가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갈등의 역사와 구조를 되돌아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힌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소위 ‘잘 나가는’ 인문학연구의 과제들을 봐도 그러한데, 대부분 다양한 갈등과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국민국가 체제를 지목하고 이를 극복하는 어떠한 것들,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서거나 국민국가를 가로지르는 지역담론과 공동체구상에 주목한다. 이는 근대 들어 우리에게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해 온 국민국가라는 틀에서 한 발 떨어져 먼발치서 바라보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주로,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나 공간, 아니면 지역 또는 지방을 사유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는 어디까지나 육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한계는 지닌다. 지금까지 인간 활동의 주요 무대는 육지였을 수 있지만, 인류사는 바다가 육지를 둘러싸고 그 사이를 유동하며 사람, 문물 등 모든 것을 실어 나르는 가운데 형성되고 지속되어 왔다. 더구나 근대는 바다의 시대였고, 또 바다는 전쟁의 바다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류사의 특징을 생각해 본다면, 바다와 관련된 인간 활동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며, 이에 해역인문학을 제창한다.

왜 해양이 아니고 해역일까? 해역인문학은 바다 위나 연안 일부 지점뿐만이 아니라 바다를 통해 이어진 육지에서의 인간 활동까지를 탐구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해역인문학의 관점은 바다와 육지를 가로지르는 관계망으로서 역사와 세계를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항구도시와 같은 바다와 육지가 만나 교차하는 지점을 연결하는 선형의 관계망에 머무르지 않고 이 지점의 배후지와 외부세계가 이어지는 넓은 관계망에 대한 이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국민국가 체제를 넘어선 사유의 양적, 질적 확대로 이어진다.

해역인문학에서는 해역 내 인간 교류에 의한 사회문화 변용을 역사로서 이해하고, 그 축적을 현재 상황으로 고찰한다. 바다를 통해, 점, 선, 면으로 확장된 관계망 위에서 이루어져 온 인간 활동의 역사와 입체적인 세계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오늘’의 이해가 바로 해역인문학의 핵심이며, 이는 오늘날 동북아지역의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의 역사적 과정을 규명하고, 접촉과 교섭의 경험을 발굴, 분석하여 연대의 길을 모색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관점이다. 많은 경우, 바다는 이변, 위험, 혼동, 유랑 등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내포한다. 하지만 이러한 뉘앙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개방성,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 현대사회는 바다와 통하는 측면이 많다.

그리고 이 ‘오늘’, 동북아지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많은 갈등과 모순은 바다를 바라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대통령은 동북아지역의 평화를 위한 철도공동체를 제안하였다. 철도뿐만이 아니라 통일을 대비한 항로개발도 필요하지 않을까? 평화의 공간, 미래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바다와 해역을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손동주 부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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