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판교 위에서 장비가 단기필마로 조조의 대군을 막아선 장면은 매우 유명한 장면입니다.
장비가 두려운 나머지 조조의 장군들과 병사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소식을 들은 조조가 와서 살펴 보는데 장비가 우레와 같은 호통소리를 내자 조조의 곁에 있던 하후걸이 놀란 나머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내용으로 유요와 싸우던 손책이 우미를 사로 잡아 가는데 이를 보고 달려 온 번능이 손책을 찌르려 하자 손책이 고개를 돌려 벽력 같은 고함을 지르니 놀란 번능이 놀라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호통에 의해 다쳐서 죽은 것인지, 호통에 놀라 떨어 지면서 낙상으로 인해 죽은 것인지 불명하지만 어느 경우든 호통으로 인한 폭행이 전제되어야 하니 ‘소리가 폭행에 해당할까’라는 관점에서 글을 적어 볼까 합니다(제대로 따지려면 장비의 고의부터, 호통과 사망의 인과관계, 위법성 조각사유니 하는 것들도 고려해야 하겠지만..이런 건 재미 없으시잖아요..? 라고 게으른 필자가 핑계를 댑니다…).
결론부터 내자면 장비와 손책은 하후걸과 번능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폭행의 기본적 개념은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입니다.
말 그대로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이면 폭행이니 ‘재떨이를 던져 맞히지 못 해도’ 이런 행위는 분명 폭행에 해당합니다(응? 재떨이? ‘넘버 3’?).
그리고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이면 폭행이니 ‘때리지 않았다, 톡 쳤다’, ‘치지도 않았다, 살짝 닿았다’, ‘그냥 팔만 잡았다’해도 이런 행위는 분명 폭행에 해당합니다(폭행과 관련한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참 많이 등장하는 얘기들인데, 반드시 아프게 때려야만 폭행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소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유형력의 행사인 폭행에 해당하지 않을까?
얘기를 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귀에 대고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질러 상대방의 고막이 찢어 지거나 귀가 멍하게 할 수는 있는데, 이 경우에는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물론 ‘쿵푸허슬’에서처럼 ‘음공’으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며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리로 사람을 공격하든(음공), 공간의 한계를 넘어 나의 소리를 상대방의 귀에 직접 전달하든(전음입밀), 공간의 한계를 넘어 사방에서 나의 소리가 울리게 하든(육합전성) 이런 행위는 ‘내공’(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그 내공말입니다)이 있어야 가능한데, 삼국지 어디를 보아도 장비가 내공을 사용하였다는 흔적은 없으므로 논의에서 제외합니다만… 사실은 무협지 얘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장판교에서 소리를 지른 장비가 행위의 대상으로 하후걸을 인식한 것도 아니고(폭행의 고의) 하후걸의 지척에서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니니 장비를 폭행으로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맞혀서 직접 타격하거나 때리는 정도에 이르러야 폭행이 되는 것은 아니니 일상 생활에서 마주친 분노의 상황에서도 이 점 만큼은 기억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