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예상했던 대로다. 누구는 예상보다 빨랐다고 하지만 토론은 명분을 갖추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고, '의견을 묻되 결론은 내 뜻대로'였다. 아군과 적군만 존재하고 대화는 없이 투쟁만 있는 정치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더불어민주당이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8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결하고, 정무위원회를 열고 처리할 모양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뜨거운 감자인 공수처법 개정에 국민의 시선이 쏠린 사이 기업규제3법(일명 공정경제3법)을 기습적으로 상정했다. 재계는 마지막까지 처리를 미뤄달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메아리가 아득하다.
사실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및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두고 벌어진 싸움의 결과는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진영이 추진한 이 3법을 경제단체에서는 '기업규제3법'이라고 부른다. 기업활동을 규제하고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헤지펀드 등으로부터 쉽게 공격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리는 '공정경제3법'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여당과 진보진영의 몫이었다.
국민들은 법의 세세한 장단점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름이 가져다주는 '공정'이라는 이미지가 의사결정의 대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프레임 전쟁의 승리다.
'공정경제를 하자'는데 반대할 이가 누가 있겠나. 우월적 프레임을 확보한 후에 재계가 이 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공청회도 하고, 토론회도 열자고 해서 겨우 여당과 논의를 하고, 야당과의 대화시간을 잡아나가는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법사위를 통과하고, 정무위원회에 상정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야당정치인들처럼 기업인들이 국회로 몰려가 상임위 출입문을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논란의 핵심 쟁점이 되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이나 대주주의결권 제한 등을 국회로 예를 들어보자.
'국회에서 다수당인 여당의원은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를 할 때는 3%만 발언을 허용하거나, 입법에서 3%의 의결권만 허용한다'라고 하면 동의하겠는가.
이렇게 여당의 발언권이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자고 하면 여당 국회의원들은 '공정정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혀 공정하지 않다. 기업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고 의견을 반영해달라는데 힘으로 밀어붙여 법제화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민주당은 재계의 목소리를 듣는 척했다. 기업인들은 이번 기업규제3법의 처리 과정을 전혀 공정하다고 보지 않는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실현은 '표를 많이 가진 쪽 일방의 결정'이 가져온 결과를 부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정의'이지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아니다. 룰이 정해짐으로 해서 피해를 볼 수 있는 쪽이 수긍할 수 있는 결과를 가질 때 이를 '공정으로서의 정의'라고 부른다.
8일 정치권의 움직임에 경제단체장들은 안타까움과 자신들의 무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본회의에 상정되고 통과되면, 이런 국회 움직임에 대해 딱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뒤이은 그의 말처럼 재계 입장을 반영하지 않아 부작용이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땐 이번에 의결한 의원들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강력한 권한과 함께 책임을 지는 게 그 자리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