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원칙의 변화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1.12.22 02:05
최준영 위원

시대의 변화는 정치·경제 등 하나의 영역에서 끝나지 않고 상호 연결 속에 진행된다. 199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대두된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생산방식은 충격적이었다. 재고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능률을 극대화하는 이러한 생산방식은 같은 시기 진행된 탈냉전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를 변화시켰다. 비용이 낮은 지역에서 생산된 요소들을 결합해 제품을 공급하는 길고 긴 공급망은 국경을 넘어 상호 연결되면서 발전했다. 산업이 경제에, 그리고 다시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였던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은 이러한 추세는 30년이면 한 세대가 변한다는 경험칙처럼 2010년대 후반 들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미중 갈등이 불거지면서 시작된 공급망의 충격은 2020년부터 진행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다시 증폭됐다. 기업들은 2년에 걸쳐 진행된 봉쇄와 회복기간 동안 공급망의 훼손, 그리고 경제가 재개 이후 이어진 운송 병목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은 반도체가, 미국과 유럽의 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재고가 부족했으며, 한국의 붕어빵 가게들은 재료가격 인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기업들로 하여금 '재고'를 전략적인 차원에서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기업은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시장의 수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왔다. 말 그대로의 저스트 인 타임의 구현을 위해 노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기업들은 보유 재고를 늘리고 주요 공급업체와 장기계약을 하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에 따르면 기업의 61%가 중요 제품의 재고를 늘렸고 55%가 최소한 2가지 원자재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업체와 소매업체가 경쟁적으로 재고 수준을 상향시키면서 창고비용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대응은 다시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첫째, 공급업체를 다각화하고, 외부로부터의 부품조달이 아닌 현지에 위치한 공급업체를 활용함으로써 지역별 허브를 만들어 공급망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경제를 넘어선 정치·외교적 동맹구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둘째,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을 활용한 잠재적 병목현상 사전 경고시스템 개발은 기술과 데이터에 기반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촉진시키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기업과 주요 부품업체인 보쉬 등이 결성한 카테나엑스(Catena-X)의 경우 과거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온 정보 및 데이터 공유에 대한 표준을 설정해 관련업계의 모든 사람이 직접 공급업체뿐만 아니라 그들이 의존하는 수십만 개의 소규모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기술적 동맹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과거 담합으로 간주될 수 있는 행위도 안정적 공급망 유지라는 명분으로 묵인될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하고 있다.

냉전 이후 진행된 세계화의 30년은 이제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그때의 세계는 2019년과는 다른 모습일 것임은 분명하다. 중국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저비용 제조센터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과거로의 복귀보다는 변화하는 질서와 체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2022년은 변화가 본격화할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