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에 한 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적한 정책문제를 두고 백가쟁명식 진단과 해법이 쏟아진다. 그중에는 정답도 있고 오답도 있을 것이다. 이론상 정답과 오답 사이에서 충분한 학습이 이루어지면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듯 정책 완성도가 높아진다. 현실이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이유는 소위 '번지수가 틀린 해법'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대개 과도한 정치논리가 원인이다.
어떤 정책문제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목표가 설정되면 그에 맞는 적절한 정책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 목표에는 꼭 저 수단을 써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목표와 수단이 단위, 수준, 유형 차원에서 일치하는 것이 좋다. 거시문제와 미시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실업, 인플레이션, 가계부채, 지역불균형 등은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개별 소비자나 생산자가 매일 시장에서 직면하는 문제는 미시적이고 행태적인 영역에 속한다. 개중에는 정형화한 문제도 있겠고 비정형적 문제도 있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서도 안 되지만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을 수는 없다. 더욱이 요즘 세상은 무수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문제를 쾌도난마(快刀亂麻)하기도 어렵다.
정부의 정책은 미시와 거시 영역에서 정답이 있거나 없는 문제 모두에 걸쳐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가 정부에 공평한 중재자나 심판의 역할을 넘어 직접 선수로 뛰거나 승부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도록 강요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문제해결의 출구가 아닌 새로운 문제의 입구가 더 많이 열린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답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정책 싱크홀'의 원인이다.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공공기관 또는 일부 민간기업에 고용을 떠넘기는 것이나 국토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추진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그렇다. 이들의 고용확대나 이전 또는 해체로 개발연대부터 켜켜이 쌓인 불균형과 불평등을 단칼에 해결하겠다는 그 달콤한 정치적 수사의 고지서는 우리가 지금 세금으로 치르고 있다.
2020년 국회의 문을 통과한 임대차3법이 언제 제 발로 되돌아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도 목표-수단의 불일치에 그 원인이 있다.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신념과 자기연민만 있었지 그 큰 문제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밀어붙인 깨알 같은, 하지만 번지수 틀린 규제 때문에 올봄 이사철에도 얼마나 많은 세입자와 집주인이 혼란을 겪고 있는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사회개혁 구호도 마찬가지다. 대량생산과 소비에 최적화한 경제·산업구조와 '일'이 아닌 '사람' 중심의 '계급제' 조직문화는 그대로 둔 채 레고블록 놀이에만 빠져 있다. 이 부처를 떼서 저 부처에 갖다붙이고, 수시와 정시 전형비율을 퍼센트 단위로 미세조정을 하고 몇몇 대학의 문을 닫거나 옮기기만 하면 양성평등, 소수자 보호, 교육개혁이 달성될 것이란 감언이설에 더는 현혹되지 말자.
시장이 실패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와 행정도 실패한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1종 오류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2종 오류도 문제지만 '엉뚱한 문제를 열심히 푸는' 3종 오류의 폐해는 더 심각하다. 풍차를 향해 비장하게 돌진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을 이솝우화의 생쥐 사이에는 '멍부'라는 3종 오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우리식 정치의 가벼움과 조급함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복잡한 거시문제에 대한 미시적 대증요법의 치명적 유혹만큼은 피할 수 있다. '칼레파 타 칼라'(Kalepa ta kala), 좋은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스 속담이자 '혁명적 허무주의의 대표작'이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던 이문열의 1985년 소설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