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동쪽의 이스트 70번 도로. 회색빛의 고풍스런 건물엔 렘브란트, 요하네스 베르메르(페르메이르) 등 유럽 거장들의 미술작품이 들어찼다. 정원엔 봄마다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 뉴요커들을 사로잡는다. 세계적 미술관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이다.
이곳은 20세기 초 미국의 '찐부자' 헨리 클레이 프릭(1849~1919)이 살았던 프릭 멘션이다. 프릭은 미국 산업생산이 폭발적으로 늘던 1871년, 석탄을 코크스로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철의 불순물을 없애주는 코크스는 제철소의 핵심연료. 미국의 철강사업에 없어선 안될 재료였다.
프릭은 불과 21세에 시작한 이 사업으로 서른살에 이미 미국서 내로라하는 부자가 된다. 그는 미술품 수집에 심취했다. 말년이 되자 살고있던 저택은 물론, 그간 모은 모든 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오늘날 프릭 컬렉션은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등과 함께 뉴욕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미술품의 보고다.
#프릭이 생소하다면 '철강왕' 카네기를 떠올려도 좋다. 코크스 제공업자인 프릭과 '카네기철강'을 동업하기도 했던 앤드류 카네기(1835~1919)는 미 역사상 최대 부자 중 한 명이다. 요즘은 당대의 사업성과보다 자선활동의 결과로 더 알려져 있다. 카네기홀(뉴욕), 카네기-멜론 대학, 카네기 미술관 등이다.
카네기는 자신의 철강사업 기반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대학과 미술관(1895)을 세웠다. 카네기의 안목 덕에 미술관은 19세기 이후 미국 현대미술 컬렉션을 중심으로 존재감을 뽐낸다.
여기엔 경제사적 맥락이 있다. 20세기 초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며 불평등이 극심해졌다. 유럽 등 서구는 공산주의 혁명에 복지 확대로 대응했다. 초대형 부자들의 미술관 설립은 이 즈음 이뤄졌다.
그럼에도 오늘날 후손들이 그들의 100년 전 결정에 혜택을 보는 것은 분명하다. 잊혔을 지도 모를 작품들이 보존돼 명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수많은 관광수입을 지역사회에 안긴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적 자부심을 후대에 남겼다. 미래 주역인 학생들은 이들의 방대한 컬렉션에 파묻혀 수업을 할 수 있다.
#한국엔 이건희 컬렉션이 있다. 지난해 삼성가는 고인이 생전에 모은 문화유산과 미술품 2만3181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그 중 상당수를 기증 받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8월까지 특별전을 열고있다. 유럽 거장들의 작품이 없다고?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기자는 지난달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했다. 관람객들은 이중섭의 '황소'는 물론이고 김환기, 유영국, 천경자 등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전시는 예매를 위한 광클릭, 현장발권을 하려는 오픈런까지 일으켰다.
잠시 여는 특별전 정도로는 부족하다. 상설전시를 확대해 더 많은 국민이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받을 수 있게 하자. 소장품 분석과 보존, 마케팅에 중앙정부와 각 소장 기관, 삼성이 함께 나서주길 기대한다.
'이건희' 세 글자는 K-문화 콘텐츠, 한류의 새 이름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 보러 한국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