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4~2007년 금융감독위원장 재직 당시 "시중은행을 금융기관으로 칭하는 건 잘못"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정부 지분이 없는 시중은행은 '금융회사'로 부르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퇴임을 앞두고 은행장들과 만나선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회사로 인식을 바꿔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공적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에 머무르지 말고 '금융의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무대에서 돈을 버는 세계적인 기업이 돼라는 얘기였다.
금융 선진화 구호를 내건 이명박 전 대통령도 "금융기관이란 말에서 관치금융 시대 느낌이 난다"며 "금융회사로 용어를 바꾸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월가의 탐욕'에 대한 반작용에 은행의 공적 역할론이 잠시 소환됐으나 시중은행은 '금융회사'로, 국책은행과 금융 공기업은 '금융기관'으로 부르는 게 오랜 기간 일종의 '국룰'로 작용했다.
금융 공공성 논쟁이 재점화한 건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금융의 산업적 측면보단 경제의 혈맥으로서 실물경제 지원과 소비자 보호, 포용 금융이 금융정책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2017년 10월 '금융의 날' 행사 때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은행, 증권, 보험 등 민간 금융회사들을 모조리 '금융기관'으로 지칭했다. 금융 CEO(최고경영자)들에겐 "민간회사를 '금융기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며 "금융의 공공성과 책임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금융을 보는 시각이 정책 우선순위와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진 셈인데 금융이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좇는 태생적 운명을 타고 났다는 방증이다. 은행업은 정부 면허(라이선스)를 받아 국민 돈을 굴리는 규제산업이다. 규제는 장애물이지만 경쟁을 제한하는 보호막 역할도 한다. 한 편으로 시중은행은 민간이 소유한 사기업이자 주식회사다. 자금중개와 지급결제의 대가로 받은 이자와 수수료로 돈을 벌어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 직후 불거진 '관치' 논란의 기저에도 이런 양면의 시각차가 반영돼 있다. 이 원장이 은행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나친 이익 추구'를 지적하고 '합리적 금리산정'을 주문한 게 논란을 낳았다. 누가 봐도 대출금리 상승 속도와 폭을 조절하라는 압박이지만 금융의 공공성을 감안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지금은 퍼펙트스톰(복합위기)이 들이닥친 '전시'다.
당면한 고금리·고물가·고환율과의 전쟁과 은행들의 사상 최대 이익은 코로나19 확산이란 미증유의 환경이 불러 온 나비효과다. 그 덕을 본 은행들도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취약차주 지원은 은행 부실과 자산 건전성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정작 걱정되는 건 따로 있다. 돌이켜 보면 '나쁜 관치'인 낙하산 인사와 지배구조 흔들기가 가장 활발했던 때는 역설적으로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가장 강조했던 정권에서 벌어졌다. 인사와 지배구조는 민간기업 자율성의 요체다. 금융 자율성을 존중하고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5년은 어떨지 모두들 궁금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