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밥 먹여주는 예술'을 위하여

이성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22.12.13 03:50

동일본 대지진 때의 일이다. 오사카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있었다. 국가적 재난 상황이 벌어졌는데, 일본 연극계에서 터져나온 제일성은 '모든 공연을 즉각 중지하라'였다. 극장의 불이 꺼져선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소수의 '의미있는' 목소리로 치부됐다. 여론도 한몫했다. '돈 벌려고 연극하는 건 아니니 상관없지 않은가',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굳이 배려를 해줘야 하는가' 어떤 이슈가 생길 때마다 들어왔던 얘기들이라 새로울 것은 없었다.

같은 주장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각색되곤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화예술 관련 각종 지원정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예술은 원래 배고픈 거야', '가난을 각오한 사람들인데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줘야 해?' 자발적 선택이 초래한 불안정한 상황에 국가가 나서서 도움을 주어야 하는가. 맞는 말처럼 들린다.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자본주의 경제관념에서 보자면 예술은 설명하기도 납득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제안했던 천재 개념도 여전히 예술가를 규정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설명하거나 가르칠 수 없다. 예술의 원천을 개인의 천부적 능력에만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예술가들을 '별종'으로 보려는 태도와 닮아 있다. 칸트가 이 책을 쓴 것은 1790년이다. 232년 전의 일이다. 오늘날 예술가가 천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공동체적 집단 경험과 비판적 사고를 통해 전위예술이 탄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소위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을 주도했던 플럭서스 예술혁명도 삶과 예술, 예술과 비예술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비슷한 주장은 예술계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학교는 실기학교인데 실기만 열심히 하면 되지 학위가 왜 필요해?', '어차피 학위 인정 안 되는 거 알고 입학한 거 아냐?' 소위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법'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주장들이다. 개교 30주년을 맞이한 한예종은 국립대학 중 유일한 '각종학교'다. 각종학교는 6-3-3-4제의 기본학제에 속하지 않는 학교를 말한다. 지난 25년간 대학원에 해당하는 전문사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학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거기서 파생되는 불이익과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설치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몇 년 전 예술분야 일자리 연구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과거에는 '창조적 예술가'와 '기술적 예술가'로 나누어 창작자와 기술스태프를 구분했다. 이는 '예술'과 '노동'에 대한 상호 인식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예술인'이라는 용어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기술지원스태프도 예술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예종에도 기술지원스태프를 양성하는 학과와 전공이 많다. 칸트의 생각과 달리 교육과 학습을 통해 예술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밥 먹여주는 예술'이 요구되는 시대다. 200년이 넘은 낭만주의 시대의 천재, 또는 자족적 예술가상을 다음 세대에까지 고집해선 안 될 일이다. 곧 졸업시즌이다. 이번만큼은 교육자로서 졸업생들의 손에 노력에 대한 공인된 증표로서 학위증을 꼭 안겨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성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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