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작품과 유물이 국가에 기증되면서 '이건희 컬렉션'은 특별한 브랜드가 됐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이건희 컬렉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정부가 MMCA에 배정한 예산으로는 이건희 컬렉션 수준의 작품 한두 점 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유명 미술관·박물관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인류 문화재급 작품과 유물을 볼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이건희 회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 오너가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고 나름 문화예술에 힘을 쏟고 있지만, 이 회장 시절의 삼성에 비할만한 곳이 없다. 고인이 된 후에야 '천재' 경영인이란 수식어가 붙는 그는 생전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했다.
후진국이던 한국에서 태어나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게 하는데 공이 큰 그는 아마도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이 땅에선 가장 앞서 있는 선각자였고 평론가였을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이 없었다면 우리 국립 미술관·박물관의 수준은 말하기 창피할 정도였을 것이다.
소비와 임금수준에서 일본을 앞질렀다지만, 적어도 미술 등 순수예술 분야만 보면 우린 아직 일본에 훨씬 못 미친다. 한국이 순수예술 선진국이 되지 못한 건 인프라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인프라는 꾸준히 투자해 일정 수준에 올라 있다. 문화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이 더 문제다. 특히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은 반성해야 한다.
이 회장만큼 각별하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곧 선진으로 향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점을 인식한 경영자가 보이지 않는다.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 중요성은 낮게 볼 순 없다. 하지만 이 정도 경제수준에 올라온 나라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의 문화적 소양과 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너무도 낮은 상태다. 그런 점이 사회정책적 중요 결정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우선 관료들은 예산배정에 있어서 문화와 예술 그리고 관광에 더 투자해야 결국 미래 먹거리로 돌아오고 K-콘텐츠로 세계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 평소 '문화강국'을 형식적으로 떠들다가도 막상 예산을 깎고 없애야하는 순간엔 바로 눈앞에서 결과물을 증명해보이긴 쉽지 않은 문화예술 예산이 먼저 사라져버린다.
경제 선진국이라해도 문화예술이 뒷받침돼야 제대로 설 수 있다. 주요 선진국이 그렇게 인정받는 건 문화예술에서도 강국이기 때문이다. 이미 문화예술로 그리고 관광으로 먹고 산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 위에 서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경영과 국정에 모두 중요하다. 이 회장은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 평범함을 뛰어넘으려면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미래를 먼저 보고 앞서 나가기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필수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사고와 판단력은 결국 예술이 주는 힘이다. 현상 유지에 급급해선 현재 위치도 지키지 못한다.
밤새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었던 이 회장의 천재적 경영술은 문화예술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