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장이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과 체포·구속 등으로 이어지면서 행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되고 정부의 주요 사업은 대부분 미뤄지거나 불투명해졌다. 인사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부 부처의 경우 주요 실·국장급 공석이 장기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태들과 상관없이 수장공백이 만연한 조직이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이상 공석인 경우도 많다. 만성질환처럼 오래된 관행이 돼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등 과학기술계 기관장 선임 얘기다.
통상 어느 조직이나 수장의 임기가 다가오면 최소 3개월 전부터 새로운 수장을 선임하거나 재선임을 위한 과정을 추진한다. 미리 추진하지 않으면 수장이 없는 조직이 될 수 있고 결국 조직의 중요한 결정이나 사업들이 미뤄지는 등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는 처음 이곳을 접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수장 선임에 '만만디'(慢慢的·천천히)다. 기관장의 임기가 종료된 후에도 1년 가까이 후임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도 기존 원장의 임기가 각각 지난해 3, 4월에 종료됐는데 최근에야 원장을 선임했다. 5월 우주청 개청 등의 이슈가 있었다지만 1년 가까이 늦어진 셈이다.
2025년 1월 현재 기관장 임기가 종료됐지만 선임절차를 완료하지 못한 출연연은 한국한의학연구원(임기종료 2024년 4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2024년 4월) 한국생명공학연구원(2024년 8월) 세계김치연구소(2024년 8월) 한국지질자원연구원(2024년 12월) 모두 5곳에 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출연연 등 총 24곳 가운데 21%의 수장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출연연 기관장은 NST가 선임한다. NST가 공고를 내면 심사위원회의 후보자 검증을 거쳐 6배수, 3배수로 후보를 추린 후 이사회를 열어 선임한다. 최종 후보자 3명 중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되면 원점으로 돌아가 재공모한다.
과기정통부는 기관장 임기종료 예정인 기관들을 대상으로 기관운영평가를 실시한다. '우수' 이상 등급을 받은 경우 임시이사회를 열어 재선임안을 상정하는데 연임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지난해 '우수' 등급을 받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기관장이 연임에 도전했지만 NST 이사회 재적이사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모두 실패했다. 202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윤석진 원장은 '매우우수' 등급을 받고도 연임하지 못했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우수기관으로 꼽히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프라운호퍼연구소 기관장은 종신제다. 행정업무를 맡는 기간은 6년이지만 퇴직 후에도 기관에 남아 연구를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종신제라고 한다. 해외의 사례가 국내에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출연연 출신 수장이 경영에서 우수등급을 받는 사례들이 나와 고무적이다.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위해 이러한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 기관운영평가에서 우수등급을 받고도 연임이 어려운 사례가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수등급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기관장이 많아지도록 연임하는 사례도 늘어나야 한다.
최근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 대표 발의한 과기출연기관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개정안은 과학기술분야 출연연 원장의 임기가 끝나기 3개월 전 차기원장 후보자를 공개모집하거나 추천하는 등 관련절차에 착수토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나마 개선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다만 "수장을 선임하는 일조차 의무화하지 않으면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이야기는 뼈아픈 대목이다. 앞으로 과학기술계의 수장 선임도 정상화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