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치운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된 마크 앤드리슨의 칼럼은 당시 모바일 혁명과 스타트업 생태계를 관통하는 통찰로 오랫동안 회자됐다.
마크 앤드리슨은 세계 최초로 웹브라우저를 만들고 1994년 넷스케이프를 창업해 디지털경제의 시작과 함께했다. 넷스케이프에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2009년 설립한 벤처투자사 앤드리슨호로위츠(a16z)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에어비앤비, 슬랙, 트위터와 같이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에 투자하면서 가장 유명한 벤처캐피탈로 자리잡았다. a16z는 현재 총운용자산이 440억달러(약 64조원)로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다.
모든 경제영역이 디지털로 전환(Digital Transformation)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은 혁신을 주도하는 주인공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빅테크가 됐다.
그리고 2025년 현재 AI가 세상을 먹어치운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AI 전환'이 시작됐다.
2022년 등장한 생성형 AI는 전 세계를 강타하며 모든 산업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AI가 대체하기 힘들 것 같던 창의적인 지식노동이 먼저 자동화 및 지능화됐다. 전 세계 개발자의 77%가 이미 챗GPT(ChatGPT)를 활용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AI가 글로벌 경제에 최대 4조4000억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AI 시대에 스타트업은 여전히 주인공일까.
LLM(거대언어모델)을 기반으로 AGI(범용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각축을 벌이는 현 상황은 스타트업에 불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함께 시작된 모바일 혁명도 구글, 애플 같은 글로벌 빅테크간 경쟁에서 출발했지만 수많은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성장하는 기회가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AI 전환도 스타트업들에 거대한 기회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우선 기회가 워낙 크고 빅테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크다. 모든 국가와 모든 산업에서 AI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타트업도 얼마든지 선점하거나 특화된 AI를 개발할 수 있다. 한국어에 특화된 LLM을 개발한 '업스테이지'나 영상언어모델을 개발한 '트웰브랩스' 같은 국내 스타트업들엔 빅테크들이 협력의 손을 내밀고 있다. 스타트업은 아니지만 네이버의 '소버린AI' 전략 역시 비영어권 국가들을 겨냥했다. 같은 AI 모델을 사용하더라도 다른 데이터와 다른 '파인튜닝'을 해야 하는 바이오, 헬스케어 등 전문분야는 스타트업을 필요로 한다. 스타트업의 최대 장점은 빠르고 유연한 것인데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는 상황은 스타트업이 활약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된다.
AI서비스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도 스타트업들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챗GPT의 하루 운영비용이 최대 10억원이라고 한다. AI 열풍은 엔비디아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웠지만 지속성장을 위해선 효율화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 스타트업들도 '베슬에이아이' '리벨리온'처럼 컴퓨팅 자원과 전력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빅테크들의 경쟁이 결국 생태계 경쟁에서 판가름날 것이라는 점에서 스타트업들의 기회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스마트폰 역시 사용자와 기업들에 얼마나 유용한 앱이 많은가 하는 앱마켓 생태계 경쟁이 펼쳐졌듯이 AI도 공백을 메우고 영역을 확장할 우군을 확보하는 게 경쟁 우위의 핵심이 될 것이다. 빅테크와 경쟁할 수 없는 스타트업들은 매력적인 우군일 수밖에 없다.
투자혹한기에도 불구하고 AI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 같은 기회를 증명한다. AI 시대가 다시 한번 스타트업 전성시대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