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청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사회자가 이렇게 말했다. "어느 순간 더이상 높은 곳으로 가고 싶지 않을 때가 오게 됐다. 더 잘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실 어느 낮은 수준 정도만 하기로 마음먹으면 오히려 그 수준보다 더 낮은 위치에 서 있게 되더라."
이 요약은 약간 부정확하지만 당시 사회자가 조언하고자 한 취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했다고 본다. 그가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MC로 오랜기간 정상의 위치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 진실만큼 그의 말에는 모종의 권위가 부여됐다.
예능에서 고백처럼 한 저 말은 너무 높아진 자신의 몸값이 큰 부담이 된다는 배경설명과 함께 나온 것이었고 나름 겸양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만 회당 출연료가 수천만 원에 이르는 정상급 연예인 입장에서 나온 진술을 듣는 것은 일반 근로자와 시민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저 말이 가리키는 냉혹한 진실, 더 높은 곳을 원하지 않고 낮은 자리만 겨우 원하는 경우 그보다 더 낮은 자리로 전락할 것이란 조언은 뼈아프고 무섭게 한국적 현실을 환기한다.
나는 정상급 사회자의 저 사리에 꼭 맞는 지적을 내 친구 K의 사례로 조금 반박하고 싶다. K는 '정상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 조언과 정확히 반대지점에 있다. 그는 인구 60만명의 지방 소도시에서 작은 카페서점을 운영하는 소설가다. K가 범상치 않은 이유를 몇 가지 곧장 꼽을 수는 있다.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 품은 '월급쟁이가 되지 않겠다'는 소박한 결심을 상당기간 유지했고 지금도 견지한다는 사실, 자신의 오랜 꿈인 문학에 투신해 결국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는 사실은 그를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지금의 K를 설명하는 가장 큰 부분은 '카페 자영업자로서 유일한 수입원인 자신의 영업장이 너무 유명해지지 않기를 원한다'는 소망에서 비롯된다.
체코 프라하 출신 소설가를 기리는 이름을 가진 K의 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한 권 한 권 모두 서점의 주인인 그가 직접 매입해 손수 꽂아둔 것들로 이제 수천 권이 돼 여느 서점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책들 외에도 그가 목수와 디자이너로서 몇 년간 직접 손으로 만들거나 심어온 것들, 나무 바닥과 책장, 책상, 의자, 담쟁이넝쿨과 식물들, 회색 벽과 심지어 스피커와 앰프는 이 서점을 유일하고 명실상부한 분위기로 몰아간다. 그래서 나는 K가 만든 이 카페서점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는데 그는 내가 제안한 섣부른 마케팅 방법들을 한사코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일한 수입원인 자신의 서점이 고객들로부터 외면받길 원하지도 않는다. 이 작은 서점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적당히 해결할 수 있기를, 손님들이 와서 좋은 책을 사가고 K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맛있게 마셔주기를 바라는 정도다(이곳의 필터커피는 전국에서도 수준급이라고 생각하는데 K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커피의 양을 세심히 살피곤 자신이 내린 커피의 맛을 교정하기도 한다).
이런 K를 볼 때 혼자 운영하는 이 서점이 전국적인 명소가 되고 너무 많은 손님을 맞게 되는 '비극'을 예방하고자 마케팅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나는 짐작하는 것이다. 자영업자가 매출과 이익의 극대화를 거부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 어떤 예상과 달리 K는 상속받은 재산이나 선물로 받은 자산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K는 단순히 경쟁과 성장을 회피하는 것인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서점과 삶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 둘을 일치시키고자 매일같이 적극적인 모색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삶과 서점의 지향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K자영업자의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