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 양자컴 살아남으려면

박건희 기자
2025.02.24 04:00

"양자컴퓨터가 정말 실현될까"라는 질문 뒤 곧바로 붙는 말이 있다. "솔직히 양자컴퓨터가 뭔지 모르겠다"다. 모두가 미래 유망 기술이라고 지목하는 이 기술이 대체 어떻게 내 삶을 더 좋게 바꾼다는 건지 쉽사리 와닿지 않아 묻는 말이다.

양자컴을 설명하기 위해 으레 붙는 '기존 컴퓨터로는 수백 년 걸리는 계산을 몇 분 만에 끝내는 계산기'라는 말은 사실 충분치 않다. 복잡한 단백질 구조를 빠르게 찾아내는 기능은 신약 개발이라는 결과물까지 고려하면 희망찬 기대감을 주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과는 별 관련이 없다. 인류의 머리로는 풀지 못하던 수학적 난제를 컴퓨터가 찾아준다는 전망은 흥미롭지만, 역시 '오늘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양자컴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투자자를 위해 이 이상의 설명을 개발할 의지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래 유망 기술'이라는 용어 하나면 그 어떤 모호성도 쉽게 용인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리학적 개념이라는 단어가 덧붙여지면 양자컴의 위상은 더 건드릴 수 없이 높아진다. '자세하게 알 순 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기술'이라는 결론에 빠르게 도달한다. 당장 뚜렷한 기술적 성과를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선 기업으로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접근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 측정하기 전까진 실존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기술인 채로 남아도 괜찮은 게 양자컴 생태계라면 이 세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자체 양자컴이나 QPU(양자처리장치)가 없음에도 마케팅을 벌이는 국내 회사가 화제가 됐을 때 양자 산업계는 숨죽이고 관심이 시들해지길 기다렸다고 한다. 기업은 으레 그렇게 마케팅해 투자자를 모은다는 게 중론이었다. 양자 학계와 관련 정책자 사이에서도 몸집 부풀리기에 대한 우려는 오래 제기됐지만, 누구도 나서서 지적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양자컴의 핵심에 서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지도, 그렇다고 자성책을 강구하지도 않은 것이다.

올해 100년을 맞이한 양자역학 기념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축하할 수 없다. 무책임한 가능성의 다른 이름은 희망이 아니라 거짓이다. 실체 없이 가능성만 제시해도 과학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우리 양자컴이 세계 속에 설 자리는 없다.

박건희 정보미디어과학부 기자 /사진=박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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