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현 정부가 천명한 'AI(인공지능) 3대 강국'이란 목표를 의료AI에서 시작하자고 제안하며 의료AI에선 한국이 '1대 강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의료AI는 '소버린 AI' 측면의 가치도 크다. 이를 위해 파격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했는데 이번에는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려고 한다. 바로 병원에 AI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앞서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전 국민에게 '무료 AI바우처'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를 언급했다. 이를 의료분야에 응용해 병원에 의료AI를 도입할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의료AI의 혁신을 촉진하고 한국이 글로벌 의료AI 기술의 패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은 의료AI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의 경쟁력을 갖췄다. 원천기술, 기술을 사업화하고 인허가하며 의료현장 적용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진행된다. 문제는 좋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하나의 국영 건강보험만 운영하므로 기술도입에 보수적이다. 병원 입장에서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기술은 도입을 꺼린다.
병원이 AI를 도입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해준다면 기업은 매출을 일으킬 수 있고 국내 성장을 바탕으로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의료AI에서 기술, 산업, 규제, 병원도입, 데이터, 근거창출, 보험적용 등은 모두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기에 병원도입 촉진은 선순환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필자가 최근 느끼는 한국 의료AI 생태계의 큰 변화는 일선 병원들이 AI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얼리어답터' 병원 위주지만 병원에 바우처를 제공해 AI를 도입하는 문턱을 더 낮춰준다면 의료AI는 캐즘을 넘어 주류시장으로 확대될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AI나 도입할 수 있게 해서는 안된다. 이 정책의 리스크는 결국 재정의 낭비일 것이므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인허가받은 AI'로 제한하면 어떨까 한다. 최소한의 성능과 안전성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식약처의 인허가를 받은 AI가 300개가 넘어가므로 병원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충분하다. 그중에서 무엇을 도입할지는 시장에, 즉 병원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개별 병원의 니즈에 맞춰 여러 AI의 기술력, 정확성, 임상 결과, 근거수준 등으로 판단토록 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AI 육성을 위한 재정지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로는 의료AI만 한 게 없다. 독일의 DiGA(디지털 치료기기 급여체계)를 살펴보자. 독일은 2019년 디지털 치료제로 허가받으면 최소 요구사항만 갖춰도 수가를 지급하는 파격적인 제도인 DiGA를 도입했다. 그 결과 디지털 전환의 후진국 독일이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선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를 위해 지난 5년 동안 독일은 약 3800억원을 지출했다.
정부가 수천억 원의 재정을 써서 기업가치가 조단위를 넘는 AI기업을 몇 개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나갈 수 있다면 이는 현 정부가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이 금액이 크다고 생각하면 메타가 AI분야 인재 1명에게 1000억원의 연봉을 지불한다는 것을 상기해 보자.
최근 '국가대표 AI' 선발은 범용 LLM 위주로 진행된다. 하지만 미래 AI시장은 범용 LLM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여러 버티컬에 특화된 모델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그중 핵심분야가 의료며 현재 한국은 그 경쟁의 선두에 있다. 병원에 AI바우처를 제공한다면 병원도입-데이터-근거창출-기술-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소버린 AI' 확보로도 이어질 것이다.